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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폴 틸리히(Paul Tillich)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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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틸리히는 1886년 8월 20일 독일 부란데베르그 지방의 스탈찌델빠이 구벤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부친은 푸러시아 교회의 목사였다. 그는 루터파 교회의 경건한 가정에서 성장한다.
- 틸리히는 1904년 베르린대학에 들어가 튀빙겐대학과 할레대학에서 공부하고 1912년 할레대학의 신학교수가 된다. 그 해 루터파 교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목회를 하다가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남으로 그는 군목에 입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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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이 끝나자 베르린대학의 교수로 부임하여 5년간 신학강의를 한다. 1924년에는 말버어그 대학에서, 1926년에는 드렌스텐 대학에서, 1929년까지는 라이프찌히 대학에서, 1929년부터는 프랑크폴트 대학에서 철학교수로 봉직하였다.
-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총통이 되자 그는 해임이 되고 라이홀드 니버의 초청으로 미국 뉴욕의 유니온 신학교의 교수가 된다. 1954년까지 강의를 하다가 하버드 대학교의 교수가 되고 1962년에는 시카코 신학대학의 신학교수로 취임한다.
- 그는 1968년 10월 23일 심장마비로 타계하였다. 그의 저서로는 "프로테스탄트 시대" "존재에의 용기" "조직신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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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폴 틸리히의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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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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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틸리히의 신론은 존재자체(存在自體)의 신관이다. 신은 존재자체(存在自體)다. 신이 존재자체가 아니고 신이 존재한다고 한다면 그가 비록 최고자라고 하드라도 상대적 존재(相對的存在)에 불과(不過)하게 된다.
- 신이 신이 되려고 하면 신은 존재자체(存在自體)이거나 존재기반(存在基盤)이거나 존재 원동력(存在原動力)이어야 한다.
- 신은 존재자체이므로 존재자체로서의 신은 신의 본질과 신의 실존의 구별할 수 없다. 그래서 본질에서 실존으로의 변천이 신에게는 없다. 존재로서의 능력이 되는 신은 모든 존재를 초월해 있고 또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된다.
- 신은 자아(自我)나 세계라는 개념을 통하여 포착할 수 없다. 우리는 신을 자아(自我)라고 생각할 수 없다. 신을 `자아(自我)`라고 한다면 `비자아(非自我)와 대응적관계(對應的關係)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절대자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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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신은 초월적인 신이시기 때문에 신이 세계가 될 수가 없다.
- 신은 또한 인격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만일 신이 인격자가 된다면 다른 모든 인격자들의 기반(基盤)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신이 완전무한(完全無限)한 천상적(天上的)인격자라고 한다면 신은 인간의 궁극적 관심이 될 수 없다.
- 인격이란 말을 반대할 수 없으나 인격신을 긍정할 수는 없다. 신은 신 이상(以上)의 신이기 때문에 신학적 유신론의 신을 초월하여 있다. 신학적 유신론의 신은 존재는 되어도 존재자체는 되지 못한다.
- 그래서 주체와 객체의 개념이 생긴다. 그러면 신은 절대자가 될 수 없다. 신은 신 이상의 신이심으로 인격일 수 없다. 결국 신은 초인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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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관에 대한 반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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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틸리히는 신의 절대성을 강조하다가 신의 인격성을 부정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자연신론(Deism)이 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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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신은 인격적인 신이시다. 하나님은 눈이 있고 귀가 있고 손과 발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히스기야 왕의 눈물을 보았다고 하였다. 귀가 있어서 히스기야 왕의 기도를 들었다고 하였다. 또 손이 있어서 붙들겠다고 하였고, 발이 있어서 가까이 오시겠다고 하였다.
- 하나님은 지, 정, 의가 있어서 사람처럼 알고, 느끼고, 행동을 하신다. 하나님은 인격적이시기 때문에 인격적인 인간은 인격적인 신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 그러므로 신은 초연적(超然的)이며 인격적(人格的)이므로 인간은 양자를 인간이성(人間理性)으로 합리화하려고 하지 말고 긍정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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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종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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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틸리히는 실존적(實存的)종교관을 피력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 즉 말씀이 실재가 되었다, 이는 옛 것을 새롭게 하는 새로운 실재적(實在的) 계시임을 의미한다.
- 태초에 말씀이라는 것이 존재하였는데 이 동일한 말씀이 육신이라고 하는 새로운 존재로 변모하였다. 이 "새 존재"는 전혀 새로운 창조의 존재가 아니다. 본래 있던 옛 존재이다. 그러나 육신화(肉身化) 되어지는 실존의 새 존재가 되었다
- 변모된 이유는 화해(和解)에 있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옛 존재가 새 존재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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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이 새 존재에 대한 구원은 세상이지 기독교인만의 것은 아니다. 새 존재의 출현은 인간전체에 대한 구원이었기 때문이다.
- 종교란 영적 생활의 특이한 기능이 아니라 인간적 모든 기능의 차원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영적 생활에 그 목적이 있기 때문에 종교란 궁극적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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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관에 대한 반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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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해(和解)를 위한 "새존재관"의 수립(樹立)은 인정이 되지만 구원이 만인에게 돌아간다고 하는 것은 만인득구설(萬人得求說)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실패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택자구원 완성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었는데 택자가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면 십자가의 능력에 하자(瑕疵)가 있다는 것이다.
- 십자가의 능력은 완전하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실효적(實效的)죽음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택자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보혈의 가치는 택자를 위하여 하나님께 완전 수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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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문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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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틸리히의 종교는 모든 문화적 표현의 근원이며, 종교표현양식은 문화론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종교와 문화는 상호 예속되며 양자(兩者)는 분리될 수 없다.
- 신정통주의자들은 신인간의 본질적인 차이(差異)로 신인간의 상봉은 우연적(偶然的)이라고 하지만 종교와 문화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신인간의 만남은 우발적이 아니라 자연적인 귀결이다.
- 신은 인간를 초월하여 분리될 수 없으며 종교와 철학은 화해가 가능하다. 그런데 이 화해는 헤겔(Hegel)식의 사색에 의한 화해도 빠르트 식의 신앙에 의한 화해도 아니고 실존적화해(實存的和解)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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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관에 대한 반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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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틸리히는 문화의 근원이 종교라고 한 것은 타당하지만 종교와 문화를 동등(同等) 동일시(同一視)한 것은 잘못이다(어느 국가든지 그 나라의 문화는 어떤 종교를 섬기느냐에 따라 나타나며, 국가가 선진국인가 후진국인가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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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종교와 세속을 동화(同化)함으로써 종교적 신성(宗敎的神性)을 오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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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③ 신은 인간을 초월하여 분리될 수 없다고 하였으나 신은 독립하여 존재하며 의존적(依存的) 상대적(相對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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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④ 종교와 철학은 화해될 수 있다고 하였으나 종교는 감정적 직관의 무리수이며, 철학은 이성적 논리의 유리수이므로 화해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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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성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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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틸리히는 성경의 문자적 해석은 시인할 수 없으니 무한자인 신이 직접적으로 표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무한자는 유한자를 초월하기 때문에 무한자는 유한자에게 상징과 비유로 전달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상징과 신학은 종교언어의 최상의 형태이며 참된 상징은 그것이 상징하는 실재에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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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징은 계시의 매개물이다. 그런데 상징은 발달과 소멸이 따른다. 동정녀 출생은 강력한 상징이지만 현대인에게는 그것이 정당한 상징으로 수락되지 않는다. 현대인에게는 새로운 수락방법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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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관에 대한 반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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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자적 해석은 부인하면서 문자로 된 상징은 시인하는 것은 모순이다.
- 성경은 허위에 무지한 정직이므로 비유적 모조품이 될 수 없다. 상징과 역사적 사실과는 부동의 상극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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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기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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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예수의 그리스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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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틸리히의 기독론은 신학의 핵심이다.
- 실존속으로 뚫고 들어옴으로(말씀이 육신이 되어) 그리스도의 예수 안에 나타난 새존재는 새존재의 능력으로 실존을 뚫고 들어오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예수인 자신을 그리스도인 자신에게 희생시켰기 때문에 예수는 그리스도가 된다.
- 예수는 자신을 잃지 않고 그리스도와 결합되었으므로 그는 참인간이 된 것이다. 다른 어떤 점보다도 본래적인 예수 자체가 그리스도를 만드는 것이다. 예수의 인격이나 교훈이나 행동 등은 예수의 존재, 즉 그리스도의 원인이 아니고 표현이다. 그런즉 예수의 유한한 자아를 종교적 예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우상숭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일화, 비유, 교훈들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궁극적 지체가 표시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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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의 그리스도화에 대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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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를 그리스도화 한 것은 타당하지만 인격화의 부정은 부당하다.
- 사실을 외면한 신학은 환상일 수밖에 없다. 육신화된 예수자체가 그리스도 자신이지 인간이 된 예수가 우상일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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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우주적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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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이 육신이 된 사건은 신과 인간과의 관계를 궁극적으로 해석해 줌으로써 결국 거룩과 속됨이 분리될 수 없다.궁극적 실재의 힘은 역사적 자체의 힘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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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주적 관건에 대한 반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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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이 육신이 된 것을 성(聖)과 속(俗)의 일치로 본 것은 성(聖)과 속(俗)의 혼돈을 의미한다. 궁극적 실재의 힘과 역사적 자체의 힘을 동등시한 것은 무한과 유한의 일치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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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③ 치유적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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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원이란 부서진 것을 다시 회복함을 의미한다.
- 기독교의 구원이란 회복이요 치유다. 기독교가 언급하는 치유는 은혜를 말한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것은 치유된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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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유적 기능에 대한 반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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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원과 치유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구원은 천국과 지옥에 관한 차원이요, 치유는 사망이전의 한계를 말한다.
- 그러므로 구원을 치유의 선(Line)으로 보는 것은 차원을 달리하는 격차의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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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④ 사랑의 능력
- 새존재의 능력은 사랑으로 표현된다.
- 사랑에는 에로스, 필로스, 아가페의 종류로 구분되지만 이것들은 다 하나의 사랑의 여러 측면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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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능력에 대한 반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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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틸리히는 속화사상에서 사랑의 종류를 혼돈하였으나 각 사랑은 근본적으로 구분되어 있다.
- 에로스( )는 이성간의 횡적 사랑이요, 필로( )는 진리를 추구하는 수직의 상승적 사랑이요, 아가페( )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강(下降)의 사랑이다.
- 이 여러 사랑은 성질상으로는 동질의 것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차원이 다르다.
- 에로스는 횡적이요, 필로는 상승이요, 아가페는 하강이다.
- 에로스는 감정적 직관이요, 필로는 이성적 사색이요, 아가페는 영적 선물이다.
- 에로스와 필로는 인간이 성장하면 정서와 지성이 자발적으로 생성하지만 아가페는 성령으로 거듭나야지만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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