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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틸리히의 종교이해
이 글은 폴 틸리히의 "기독교와 세계종교"라는 책을 서평한 것인데, 이를 위하여 폴 틸리히의 근본적인 신학방법론과 신학적 사고를 살펴본 것입니다.
1.들어가는 말 많은 20세기의 신학자들 가운데서 현재 20세기 황혼의 들녘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이는 폴 틸리히라 생각된다. 바르트는 20세기의 신학에는 막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세속사상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또 니버는 그 영향력을 신학과 세속사상에 미쳤지만 지역적으로 신대륙에 한정되어 있었다. 이들과 달리 폴 틸리히는 그 영향력을 신학과 세속사상, 그리고 유럽과 신대륙 모두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폴 틸리히의 "기독교와 세계종교"를 서평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사상적 기초와 근거를 알아야만 한다. 즉, 폴 틸리히의 종교에 대한 생각을 알기 위해서는 그의 신학적, 철학적 근거와 결론,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가 해결하기를 원하였던 학문적 질문이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틸리히의 학적 체계 전체를 살펴보고 명쾌하게 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그의 사상을 정통신학에 근거하여 비판하는 것은 우리의 의도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공평한 작업이다. 따라서 우리는 단지 종교에 대한 그의 생각의 전제와 기초의 테두리만을 살펴볼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그의 종교사상이 얼마나 그 자체의 이론에 충실하며 현실에 성공적으로 접목되는 지를 살펴봄으로서 그의 종교사상, 나아가 그의 신학적 사상체계까지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근거하여 우리는 그의 책 "기독교와 세계종교"의 핵심이 무엇이며 그 목적과 결론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여기에서의 우리의 작업의 주된 목적이요 흐름이다.
2. 틸리히의 사상적 전제
2.1.사상적 동기 1)전통교회와 세속문화 사이의 균열 틸리히에게 종교의 문제는 언제나 문화와 더불어 논의된다. 종교란 인간의 정신적 영역의 하나의 특별한 기능이 아니고 정신생활의 모든 기능의 심층의 차원이다(the dimension of depth). 틸리히가 "심층"이라는 은유를 사용한 의미는 삶의 종교적 영역은 인간 생활 안에 있는 궁극적이고 무조건적인 것, 즉 사람의 존재를 유지시키고, 사람의 생활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종교는 문화의 실체요,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틸리히의 종교이해에는 20세기 초 유럽대륙을 휩쓸었던 1,2차 세계대전의 역사적 경험이 있었다. 그에게 문제로 와 닿은 것은 전 유럽에 걸쳐 급변하는 문화와 종교적 전통사이의 균열현상이었다. 즉 교회는 세속적 문화의 자율성을 비난하였고 세속문화는 교회의 초월적 타율성을 비난하고 있었다. 따라서 틸리히에게 있어 "전통기독교의 초월적 메세지와 혁명적 운동의 현실적인 희망간의 균열"은 도저히 결합될 수 없는 것이었다. 틸리히는 이러한 문제에 직면하여 먼저 종교개념연구를 시작하였는데 그는 종교개념에 대한 철저한 부정과 긍정의 변증법적 방법으로 접근하였다. 이로써 종교의 본질적 이해가 회복되면 전통적 교회와 변혁적 문화 사이의 양극현상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이 과정에서 "신율적 문화'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는데 이것이야말로 종교와 문화가 만날 수 있는 장소였다.
2)틸리히의 종교와 문화 연결 1차 세계대전 이후 종교개념은 두 가지 방향으로 나뉘어 연구되는데 첫 번째는 막스 베버와 에른스트 트뢸취에 의한 종교와 근대의 역사적 관계를 근대라는 전체적 의미 안에서 작업하는 것이었다. 즉 이들은 전통적인 기독교는 더 이상 종교에 대한 근대적 가치 개념과 일치하지 못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과거에 기독교가 담당하였던 역할을 이제는 사회이론 안에서 종교이해의 출발점을 찾아야 한다고 보았다. 두번째는 루돌프 오토와 부버, 바르트 등의 종교를 반근대라는 대항운동과 연결시키는 경우이다. 이들은 전자와 달리 종교를 역사나 문화, 사회적 구조에서 분리시켜 종교의 실존적이며 인격적이고 존재론적인 성격을 드러내려하였다.
틸리히는 이러한 종교이해의 양대 흐름을 자신의 체계 안에 종합시키려 하였다. 근대의 역사의식을 근거로 종교의 사회학적 기능을 구축하면서 동시에 종교의 근본개념을 신학적으로 밝히려는 것이었다.
2.2.사상적 전제 틸리히의 사상적 기본전제중의 하나는 "신학은 변증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학은 현대상황에 말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 개념을 형식화하여야 한다. 즉 틸리히에 의하면 신학은 반드시 "답변하는 신학"이어야 하는데 그것은 그 본질적 진리와 유일한 특징을 유지하면서 현대지성에 기독교의 메세지를 적용시켜야 한다.
두 번째 전제는 변증적 신학은 기독교의 메세지와 그것이 표현되는 현대문화 사이의 공통적 근거를 전제하는데 그것은 신적 계시이다. 틸리히가 믿기에 현대적 존재에 의해 제기된 질문들은 특별히 신적 계시의 상징들 속에서 대답되어졌다.
세 번째 전제는 신학의 변증적 임무에 있어 철학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과 철학자들의 하나님은 동일한 하나님이다"
네 번째 전제는 신학에 유용한 철학의 특수한 분야는 존재론이다. 틸리히는 사실상 철학을 존재론과 동일시한다. 즉 "철학은 객체로서의 실체에 대한 인식력있는 접근이다"
다섯 번째 전제는 존재론에서 인간존재의 특별한 본질이다. 이것은 "인간은 소우주이다"는 말에 잘 나타나고 있다. 이것에 의해 틸리히는 인간 안에 나타난 존재의 능력과 구조는 어떤 다른 피조물과는 다르다. 인간존재는 스스로의 위에 그리고 넘어서 잇는 존재의 구조에 열려있고 관계되어 있고 그 결과 그들의 존재는 궁극적 실체에 대한 특별한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따라서 존재론적 반성은 만약 그것이 궁극적 실재와 존재자체에 대한 의문과 해답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비인간적인 자연이 아니라 반드시 인간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3.종교에 대한 틸리히의 개념과 그 방법론
3.1.틸리히의 종교철학 방법 틸리히에 의하면 종교연구 방법은 신학적, 경험적, 철학적 방법의 세 가지가 있다. 경험적 접근은 종교학의 방법으로 일반 역사와 관계되지만 이 방법만으로는 종교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학적 접근은 경험적 근거와 종교의 본질에 대한 판단 기준이 잇는 실제적이 遁현실종교를 해석한다. 따라서 이 방법은 종교의 본질에 대한 절대적으로 타당한 개념은 주관적인 심리학적 우연성에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철학적 접근은 무한한 경험의 다양성과 현실종교의 현상을 넘어서 종교본질을 파악하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종교의 객체를 종교행위와 분리하여 파악 가능하다고 가정할 뿐 아니라 절대자가 합리적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가정하기 때문에 종교본질이해에 도달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종교본질이해가 가능할 것인가? 틸리히에 의하면 "상관관계의 방법"으로 종교의 본질이해가 가능하다. 상관관계의 방법이란 위에서 말한 세가지 방법의 상호의존적 종합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각 방법의 조화나 종합이 아니다. 왜냐하면 틸리히에 의하면 종교란 한 영역에서 제한적으로 탐구될 수 잇는 특정 경험들의 집합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으로 종교는 모든 실재하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의미의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상의 방법들은 이 의미의 실재성과 본질성을 핵심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즉 "의미의 의미"가 되는 무한정자인 하나님을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상관관계의 방법이란 상호의존성안에서 실존적 질문과 신학적 답변을 통해 신앙의 내용들에 대한 설명들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틸리히는 이러한 분석에 근거하여 유한자의 존재론에 근거한 방법을 보다 자세히 제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종교의 유용성은 신적 존재의 현존의 유무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신논증은 존재론적 논증과 우주론적 논증으로 대별되는데 전자는 플라톤적 내지 객관적 형식과, 어거스틴적 내지는 주관적 형식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후자는 부정적 형식과 긍정적 형식으로 나타난다.
틸리히는 이상의 네 형식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첫째로 존재론적 논증의 플라톤적 형식에서는 '선'자체와 '진'자체가 신과 동일시된다. 왜냐하면 신은 선에 대한 본질적 이념이며 참된 지식과 존재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틸리히에 의하면 여기에서는 현존의 문제도, 신의 문제도 정당하게 다루고 있지 못하고 있다.
둘째로 존재론적 논증의 어거스틴적 형식에서는 궁극자에 대한 본질적 이념이란 반드시 현존 이념을 포함하고 잇다는 것이며 여기에서 동일성의 문제는 정당하게 제시된다. 그러나 문제는 '현존하는 궁극자'가 가능한가라는 점이다. 틸리히에 의하면 무한자를 지고의 존재로 설정할 수 없다.
셋째로 우주론적 논증의 부정적 형식은 우연성으로부터 절대적 필연성에 이르는 논증이다. 그러나 틸리히에 의하면 여기에는 결론은 없고 단지 서술만이 있을 뿐이며 또한 이 서술은 증명이 아니라 분석에 그친다.
마지막으로 우주론적 논증의 긍정적 형식은 소위 목적론적 논증이다. 그러나 틸리히는 이 논증이 현실구조를 가능하게 하는 창조자에는 이르지 못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논증을 틸리히는 "종교철학의 두 가지 논증"에서 존재론적 차원인 어거스틴적 유형과 우주론적 차원인 토마스적 유형으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다.
어거스틴에 의하면 하나님은 모든 논쟁의 전제이다. 즉 "하나님은 하나님 문제의 전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종교적 논의의 기초이지 대상이 아니며, 따라서 하나님 지식의 직접성이 강조된다. 즉 존재론적 접근의 출발점은 자아와 자아의 직접적인 자각이다. 반면에 토마스에 의하면 하나님에 이르는 이성적 방법은 간접적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지성적 인식은 감각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토마스에 의하면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 인식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두 가지 유형을 틸리히는 자신의 체계 안에서 상호 관련성을 가지도록 만들려 시도한다. 이 상호 관련성의 기초는 어거스틴적 존재론이다. 즉 하나님은 본질이라는 사실이 틸리히의 종교철학의 전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하여 "무한정자에 대한 존재론적 자각"이 이루어진다. 이것은 전 인격적 참여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틸리히는 "실존적"이라고 부른다. 달리 말하면 틸리히는 하나님을 존재론적 기초로 설정한 후, 존재론적으로 자각된 무한정자는 "문화적 세계 또는 자연계에서 인식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종교와 문화 사이의 운명적 간격"은 극복될 수 있다고 틸리히는 보았던 것이다. 결국 틸리히의 방법은 "역설의 방법"인 것이다.
신학의 입장에서 김영한 교수는 "틸리히는 바르트를 대표한 변증법적 신학자의 초자연주의의 길과는 달리, 그리고 성서와 성령에 근거하는 정통주의와는 달리, 또한 세속적인 영역에서 신적인 것을 배제하려는 현대주의적 이성주의에 대항하여 "신앙적 실재주의"의 길을 따른다. 그의 문화 신학적 착상은 인간적 삶과 형성의 모든 현상의 형식 속에서 깊이의 차원, 무제약적인 것, 최종적인 것을 추구한다. 이 깊이의 차원이 인간적 삶 형성의 종교적 의미이다. 이 착상에 있어 신의 현실과 세계의 현실은 서로 관계한다.---현실의 근거는 신앙, 곧 황홀적 경험 속에서 보여진다. 여기서 현실은 신율적인 것으로 드러난다.----여기서 틸리히의 문화신힉적 착상은 타율성과 자율성 사이의 제3의 길을 제시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3.2.종교에 대한 틸리히의 개념 틸리히는 그의 "궁극적 관심"이란 책에서 종교를 두 가지로 분석한다. 즉 "좁은 의미에서의 종교"와 "넒은 의미에서의 종교"다. 그에 의하면 후자가 참된 종교인데 이것은 "궁극적 관심에 사로잡힌 상태"를 말한다.
이에 근거하여 틸리히는 현실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신학자들과 과학자들에 의한 종교이해를 비판한다. 즉 이들은 종교가 인간의 정신 생활의 "깊은 차원임"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종교는 인간정신생활의 한 부분으로 생각되어져 왔다는 것이다. 틸리히에 의하면 이런 오류는 네 가지로 나타나는데, 첫째는 도덕적 기능으로서의 종교이해이고 둘째는 신비적 직관과 같은 인식적 기능으로 이해된 종교이해이며, 세째는 심미적 기능으로서의 종교이해, 네째는 감정으로서의 종교이해이다. 이러한 모든 종교이해는 종교의 "깊이의 차원",즉 "인간정신 전체의 심층적 상태"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종교란 모든 것의 근거이자 본질이며, 따라서 종교는 인간의 삶 전체에 관계하면서 삶의 다양한 현상과 분리될 수 없는 제 문화의 실체가 된다.
그러므로 틸리히의 종교에 대한 목표는 잘못된 종교이해, 즉 인간 정신 생활의 한 부분만으로서의 종교이해의 극복인데 이것은 오직 참된 종교이해, 즉 인간 정신생활의 전영역으로서의 종교이해에 의해 극복될 수 있다.
그렇다면 틸리히는 종교개념의 극복의 방법에 대하여는 무엇을 주장하는가? 틸리히에 의하면 종교개념을 극복하고자 할 때, 매개체로 나타나는 것은 자아, 세계, 문화, 종교이다. 이것은 무한정자의 무한정성을 제공하는 근거가 아니라, 이것들을 통해 무한정성이 무엇인지 드러나는 장소적 개념이다. 즉 그의 종교개념의 극복은 한정자로부터 무한정자를 극복하려는 모든 시도를 거부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는 종교철학"을 선언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는 종교철학"을 위하여 틸리히는 "영적 현존"으로 인한 종교의 극복을 주장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가지 중요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것은 틸리히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는 종교철학", 또는 "영적 현존으로 인한 종교의 극복"을 주장할 때 말하는 "하나님",또는 "영적 현존"이 과연 성경적 개념을 가지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틸리히의 신관을 살펴보면 그는 "신위에 있는 신(Gott uber Gott)"이라는 개념과 용어를 사용하는 데 이것은 성경적인 인격적 신을 이탈하여 존재론적이고 철학적인 신일 뿐이다. 즉 그의 하나님은 초인격적인 하나님인 것이다. 따라서 결국 그의 신관은 범신론적인 색채를 강하게 가지게 되었다. 특히 그의 신율적 문화라는 개념에 있어서는 신의 현실과 세계의 현실이 서로 관계하여 그 경계가 무너지고 모호해지게 되어 더욱 범신론적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그의 "영적 현존"이라는 개념에서 더욱 분명해지는데, 그에 의하면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는 새로운 존재의 현현"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존재가 인격적인 삶 속에 나타났고, 그 안에 모든 존재자 속에 현재하는 보편적 로고스가 개별적인 자아 속에 구체적 현실이 되었다. 예수는 새 존재의 담지자에 불과하고 그리스도는 새 존재의 힘인 것이다. 여기에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라 "새 존재의 복음"이 되어 버린다.
4.기독교와 세계종교에 대한 틸리히의 견해 위에서 우리는 틸리히의 사상적 동기와 신학적 방법 및 종교개념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우리는 이에 근거하여 틸리히의 "기독교와 세계종교"를 살펴보고 비판할 것이다.
틸리히는
- 1장 "현재의 상황에 대한 견해"에서 기존의 기독교 대 타종교라는 관점에서 탈피하여 종교 대 유사종교의 관점으로 나아간다. 그에 의하면 각 종교들은 오늘날 유사종교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에 이 도전에 어떻게 응답하는가 라는 관점에서 서로간의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계속하여 틸리히는 종교에 대한 유사종교의 도전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분석, 제시하고 있다. 그는 과학기술, 내셔널리즘, 공산주의등을 예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접근은 그 자신의 종교에 대한 이해, 즉 "종교란 궁극적 관심에 사로잡힌 존재의 상태"라는 개념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유사종교의 관심은 "궁극적 무조건적인 관심의 소재일수는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존재와 의미에 있어 제약적인 어떤 것을 위해서도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사종교가 그 의미와 존재에 있어 궁극적인 것으로 이해되기 위해서는 "공공적인 자기 긍정의 성별"이 필수적인 것이다. 또한 그의 이런 접근은 자신의 신학적 의문의 출발점, 즉 현대 사회속에 고대의 신화론적인 세계관으로 제시된 기독교를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라는 의문점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있어 문제가 되는 것은 기독교는 유사종교뿐만 아니라 일반종교에 대해서도 응답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하였다는 것이다. 즉 기독교에 있어서는 유사종교와 일반종교는 그 내용과 형식만 다를 뿐이지 동일한 세력으로 간주된다는 사실을 틸리히는 간과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틸리히 자신의 사상적 체계 속에서 이런 비판은 토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가 살펴보았지만 틸리히의 사상적 전제와 주장은 정통적인 기독교신학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것이기 때문이다.
2장 "다른 종교를 비판하는 기독교의 원리"에서는 긴 역사적 분석을 통하여 원래적 기독교는 결코 타종교에 대하여 배타적인 입장이 아니었고, 오히려 수용적 입장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기독교와 타종교와의 만남에 있어 중요한 것은 "거부하는 권리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 거부의 성질"이라고 말한다. 결국 그가 주장하는 것은 "변증법이 내포하고 있는 모든 긴장과 불확정성과 변화를 지닌 용납과 거부의 변증적 결합"이 결정적인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조건부적인 배타성의 원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이것이 기독교의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기독교의 위대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그 자신의 문화신학에서부터 출발한다. 예를 들어보면 그는 구약시대의 종교적 배타성이 모호하다는 주장을 하는데 그 근거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배타적 유일신교는 다른 신에 대립하는 하나의 독특한 신의 절대성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배타적 유일신론을 산출하는 정의의 보편성에 근거하고 잇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사실은 정의가 모든 개별적인 종교를 초월하는 원리이며, 어떤 개별적인 종교의 배타성도 조건 지우는 원리라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즉 그는 "정의의 보편성"이라는 것을 상부에 두고 구약성경의 하나님을 보고 잇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그는 기독교를 인간의 문화적, 정신적 현상의 보편성아래에 두고 있는 것이다.
3장 "기독교와 불교도와의 대화"에서는 1,2장의 그의 입장에 근거하여 구체적으로 타종교와 기독교의 만남에 대하여 비교, 분석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관계를 "하나의 구조 안에 있는 대조적인 극관계"라 묘사하면서 "역동적 유형학"이라 칭한다. 그는 이 방법에 의하여 각 종교는 "그들 자신의 명확한 성격을 상실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이 속해 있는 유형을 초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유형을 결정하는 요소는 거룩한 것의 본질에 속해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인간의 본성에 속해 있으면서 또한 이와 아울러 우주의 본질과 신의 자기 현현의 계시에도 속해 있는 것이며 따라서 두 종교 사이의 대화에서 결정적인 점은 역사적으로 규정된 유형학적 요소의 우연한 구체화가 아니라 이 요소들 자체"라는 점이다. 즉 모든 유형의 종교는 대답을 해야만 하는 어떤 물음-실존의 내재적인 목적에 관한 물음에 도달하며 모든 종교 상호간의 논의는 여기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이에 근거하여 틸리히는 기독교의 신국와 불교의 열반을 대조 분석하고 있다. 그의 분석에 의하면 신국과 열반은 실제에 대한 서로 다른 접근인데, 전자는 사회적, 정치적, 인격적 상징인 반면, 후자는 존재론적 상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종교사이의 대화는 가능한데 왜냐하면 두 종교는 모두 실존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또 다른 결정적인 상이점이 생기는데 그것은 세계에 대한 본질적 평가의 차이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대화는 종국에 이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거룩한 것의 본질이 두 종교로 하여금 상대방의 지배적인 요소를 자기 안에 포함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이에 근거하여 계속적으로 그는 참여와 동일성의 원리, 아가페와 자비, 역사의 문제 등을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견해에는 "틸리히는 바르트를 대표한 변증법적 신학자의 초자연주의의 길과는 달리, 그리고 성서와 성령에 근거하는 정통주의와는 달리, 또한 세속적인 영역에서 신적인 것을 배제하려는 현대주의적 이성주의에 대항하여 "신앙적 실재주의"의 길을 따른다. 그의 문화 신학적 착상은 인간적 삶과 형성의 모든 현상의 형식 속에서 깊이의 차원, 무제약적인 것, 최종적인 것을 추구한다. 이 깊이의 차원이 인간적 삶 형성의 종교적 의미이다. 이 착상에 있어 신의 현실과 세계의 현실은 서로 관계한다.---현실의 근거는 신앙, 곧 황홀적 경험 속에서 보여진다. 여기서 현실은 신율적인 것으로 드러난다.----여기서 틸리히의 문화신힉적 착상은 타율성과 자율성 사이의 제3의 길을 제시한다"는 김영한 교수의 평가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4장 "다른 종교와의 만남에서 비추어 본 기독교의 자기비판"에서는 먼저 기독교의 자기비판의 기준을 제시한다. 그에 의하면 이것을 알수 있는 것은 단 하나의 방법에 의해 가능하며 그 기준점도 단 하나이다."그 점은 기독교가 기초하고 있는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며, 그 방법은 이 사건의 끊임없는 영력에 참여하는 일이다. 즉 그것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모든 존재의 원천과 목적의 결정적인 자기 현현을 의미하는 상징인 그리스도로서의 나사렛 예수의 나타나심과 그 나사렛 예수를 받아들임이다. "이점에 이르는 것은 오직 참여를 통해 가능한데, 그 참여는 사람이 그 사건의 영력에 의해서 사로잡힐 때, 그리고 그 영력을 통해서 바로 그 영력이 유효했었고 지금도 유효한 여러 증인과 전통과 권위들을 평가할 수 있을 그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그 사건은 한 개인의 인격적인 삶을 지칭한다. 즉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떤 단점도 보이지 않고 자기 자신의 특수성 속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어떤 특수한 권리 주장도 하지 않는, 그러한 인격적인 삶의 이미지인 것이다. 그에게 있어 특수한 것은 그가 자기 자신 속에 있는 특수한 것을 보편적인 것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특수하면서도 특수성으로부터 벗어나 있고 종교적이면서도 종교로부터 자유로운 이미지를 통해서 기독교는 자기 자신을 비판할 뿐만 아니라 타종교와 유사종교를 비판하는 기준도 제공하는 것이다. 틸리히에 의하면 이러한 기독교의 개방성과 수용성을 제한하여 배타적으로 된 것은 성직 계급제도와 신학논쟁에 의해 이루어졌다.
따라서 종교에 대항하는 신의 투쟁 속에서의 신을 위한 싸움은 종교에 대항하기 위하여 종교를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역설적인 상황 속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독교의 자기비판의 결과는 무엇인가?
- 틸리히에 의하면 첫째 현대의 기독교로 하여금 전통적이고 가치가 감소된 의미에서의 개종을 시도하지 않도록 해 주고 있고, 둘째 세속주의에 대한 새로운 가치 판단을 하게 한다.
이런 사실은 우리에게 가장 보편적인 질문을 던져주는데 그것은 "이런 분석이 종교의 혼합을 요구하는 것이가? 아니면 어느 한 종교의 승리를 요구하는 것인가? 아니면 종교시대의 종말을 요구하는 것인가?"는 질문이다. 틸리히에 의하면 이중의 어느 것도 우리가 결코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자기 비판과 대화의 목적은 종교의 혼합도, 어떤 한 종교의 승리도 아니며, 자기 비판적인 대화를 통해 자기 자신의 종교의 심층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종교가 지향하는 이 점은 종교를 영적인 자유에로, 그리고 그 영적인 자유와 더불어 종교를 인간 실존의 궁극적인 것을 표현하는 종교이외의 표현 속에 있는 영적 현존의 비전에로 들어 올리면서 종교의 개별성을 완전히 파괴하고 있다.
이러한 틸리히의 사상에는 우리가 "3.2.종교에 대한 틸리히의 개념"에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그가 제시하는 기독교의 자기비판의 기준인 "영적 현존"은 성경적 의미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는 상관이 없는 단순한 하나의 철학적 추론에 불과하다.따라서 그가 말하는 "참여"는 불가능한 것이다.결국 그가 말하는 것은 성경적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는 상관없는 인간 자신의 실존적 노력에 불과한 것이다.그는 이렇게 말한다."인간은 소외 상태에 있지만 그의 소외는 죄로서---개인적 자유와 보편적 운명의 문제이다" 즉 소외가 죄이며 소외로부터의 탈출, 곧 인간의 완전한 실존이 구원이라는 것이다.물론 틸리히는 인간 스스로의 실존적 노력의 불완전성을 인정한다.여기에서 틸리히는 새로운 존재로서의 예수를 제시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그의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는 셩경의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와는 별개의 것이다.
5.나오는 말 20세기가 저물어 가는 이때에 종교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종교다원주의의 기운이 맹위를 떨치는데 틸리히의 종교개념과 신학사상,전제들이 중요한 역할울 하였다.
틸리히의 사상적 출발점은 현대의 급변하는 문화 속에서 어떻게 하면 고대의 신화론적 세계관으로 기록된 기독교의 메세지를 현대인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라는 정당한 문제였다. 또한 그가 주장한 인간의 전영역을 포괄하는 종교라는 개념은 타당하다고 할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제시한 전제들과 학적 방법은 성경에서 벗어났고 특히 문화신학이란 개념은 성경과 기독교를 문화아래에 둠으로서 돌이킬 수 없는 실패를 가져왔다.
참고문헌 P.Tillich, 기독교와 세계종교, 대한기독교서회, 1969 Theology of Culture, OXFORD UNIVERSITY, 1977 The New Being, CHARLES SCRIBNER'S SONS, 1955 Systematic Theology, CHICAGO UNIVERSITY, 1951 리하르트 샤에플러, 종교철학, 이론과 실천, 1994 J.C.리빙스톤, 현대 기독교사상사, 은성, 1993 김영한, 현대신학과 개혁신학, 한국기독교사상연구소, 1990 H.카워드, 종교다원주의와 세계종교, 서광사, 1990 D.H.프리만, 폴 틸리히의 철학의 하나님, 성광,1980 20th century Theology, IVP, 1994 최인식, 폴 틸리히의 종교이해, 신학사상 1995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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