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마태복음 2장

춘천 김상호 2007. 7. 26. 09:11


마태복음  2 장을 공부하기 전에


우리가 조금 생각해 보려고 하는 것은 우리 인간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중의 하나로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인간을 우리의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하나님인 예수를 우리 사람들은 각 사람마다 예수님에게 각각 다르게 반응하며 각각 다르게 예수님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을 환영합니다. 그러나 헤롯왕을 비롯한 권력층들은 예수님의 탄생 소식에 당황하며, 왕이 태어나신 것을 싫어하여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찌하여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누구이며 우리 인간이 누구인데 우리를 위하여 오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죽이려 시도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참 이상한 현상입니다.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그냥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파괴하려하고 모든 것을 죽이려 한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충분히 이것을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이것을 이해하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시니까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죽이려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환영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환영하기 위하여  먼 곳 즉 동양에서 온 동방박사들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추측컨대, 바빌로니아(오늘의 이락) 혹은 페르시아(이란)에서 온 사람들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닌 이방인들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유대인들이 말하는 이방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태어난 예수님이 누구이신 지를 알아보았고, 왕으로서 그를 경배하기 위하여 먼 길을 옵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하나님을 수천 년 동안 섬기어온 이스라엘 사람들과, 분봉왕이요, 또 이스라엘의 왕이며 유대교로 개종한 헤롯왕은 예수를 새로 나신 왕으로 받아드리지 못하고 그를 죽이려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헤롯의 입장을 그래도 이해가 갑니다. 즉 예수가 자라서 자기 자리를 위협할 사람으로 본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이해하지 못할 것은 오랫동안 구원의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여준 예수님에 대한 반응은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2 장을 몇 절씩 묶어서 살펴볼까 합니다.

A. 마태복음 2:1-2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동방박사들이 먼 곳에서 예수님의 나심을 알고 경배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온 사건이 발생한 시기는 예수님이 태어나신 후 얼마나 지나서 일어났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v7절 그리고 v16절에 의하여 추측하여 보건대, 예수님이 태어난 시기를 6 BC로 보고 아마도 BC 4년일 것이라고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v11절은 보면 요셉과 마리아는 그곳에서 일(누가복음 2:1에 의하면 요셉과 마리아는 호적하기 위하여 베들레헴에 왔음)을 끝낸 후에도 바로 나사렛 동네로 돌아가지 않고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몇 년을 그곳에 더 머물고 있는 중이었던 것 같으며, 아이를 낳았던 임시거처에서부터, 이제는 다른 곳 즉 정식형태의 집으로 옮겨 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탄생일이라고 생각하는 성탄일 12월 25일은 실제로 예수님이 태어난 날은 아닙니다. 본래 이날은 로마의 Saturnalia라는 휴일이었으나 기독교인들이 그날을 쉬면서 예수님을 경배하기 시작하여서 기독교 축제일이 되었다고 합니다.

성경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에 의하며 BC 4 년, 아마도 예수님은 누가복음 2:8절에 의거 봄에 태어났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태어날 때 목자들이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고 있었다고 하는 것은 밖에서 잘 수 있을 정도로 날씨가 따뜻하지 않았나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베들레헴이라는 동네에 대하여 잠깐 살펴 볼까합니다.

그곳은

a. 창세기 35:19절에 의하면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즉 옛 이름은 에브랏이며 야곱의 아내이며 요셉의 어머니인 라헬의 무덤과 가까이 있는 곳

b. 룻기 1:22-2:6절을 보면 룻이 보아스를 만난 장소

c. 다윗의 고향

d. 누가복음 2장에 의하면 천사가 메시아의 탄생을 알린 곳.

e. 예수님이 태어난 곳

f. 지리상의 위치는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5마일 즉 약8Km 떨어져 있는 곳.

g. 미가 5:2에서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

예수님이 이 고장에서 태어나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헤롯왕에 대하여 잠깐 살펴볼까 합니다.

헤롯은 73BC에 태어나서 40BC에 왕이 되고 4BC에 죽은 사람입니다. 반은 유태인이고 반은 이투메니아(마가복음 3:8절에서는 이두매로 표시 됨)사람입니다. 이투메니아는 에돔 즉 야곱의 형 에서의 후예입니다. 왕이 되어서는 백성들의 가난을 구제하고 공공사업을 크게 일으키고 20 BC에는 예루살렘 성전을 새로 건축하였습니다. 비록 그 성전은 70AD에 파괴되었지만. ..

헤롯은 아주 잔악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것 같습니다.

나이를 먹어서는 편집성까지 보여 아내 마리암네와 아들 3명을 의심하여 죽였습니다. 심지어 이 잔악한 헤롯의 성격에 대하여 어떤 사람이 이렇게 평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Caesar Augustus입니다.

‘나는 헤롯의 아들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그의 돼지가 되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마태복음에도 그의 잔악상이 보여 죄 없는 어린아이들을 죽이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동방박사를 인도한 별에 대하여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옛날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점성학을 믿었다고 합니다. 일정한 규칙으로 움직이는 별은  우주의 질서를 보여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체에 있어서 평소와 다른 움직임이 발견될 때에는 그것은 하나님이 우주의 질서를 일시적으로 깸으로서 사람들에게 알려주려는 새로운 사건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예로부터 하늘에 새로운 별, 특별히 밝은 별이 나타나면 별이 비추고 있는 지방에 매우 중요한 일어나거나 또는 특별한 어린아이가 태어났다고 생각하여 왔습니다.

흥미롭게도, 예수님이 태어났던 시기에, 유대로부터 세계를 통치할 자가 나올 것이라는 소문이 넓게 퍼져 있었다고 합니다. 탁시터스(Tacitus; Hisories, 5:13)는 그의 책에서 동방에서 강력한 왕이 유대로부터 나서 세계를 호령하게 될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다고 전했고, 또 이와 같은 이야기는 유대의 역사학자인 요셉푸스(wars, 6:5)에서 그리고 로마의 역사학자인 수에토니우스(life of Vespsian, 4:5)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소문이 넓게 퍼져있던 그 시대의 상황에서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던 동방박사들이 별을 따라 베들레헴까지 왔다는 것은 이상한 현상이 아닐 것입니다.


독일의 천문학자 케플러(1571-1630; 행성운동에 관한 케플러 법칙을 발견함)가 주장하는 바에 의하며 이때 동방박사를 인도한 별은 아마도 슈퍼노바(Supernova) 현상이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말로 초신성이라고 하며 별의 진화과정에서 마지막으로 별이 대  폭발을 일으켜 태양의 천만 배에서 수억 배까지 일시적으로 밝아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아마도 이러한 별이 동방박사를 인도한 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헬리 혜성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을 말씀드리는 것은 이것이 공식적인 신학자들의 의견이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냥 잠깐 쉬어 가는 의미로 말씀드리는 것이니, 제발 신앙적으로 이것이 옳다는 것은 아님을 기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냥 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정도로만 기억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은 비단 사람만이 아닙니다.

동방박사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별이었습니다.


동방박사들에 대하여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이들은 왕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아마도  페르시아(이란)에서 온 승려였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고, 혹은 바빌로니아(이락)에서 온 철학과 의학과 과학에 정통한 현자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또한 이들은 별을 보고 점을 치는 것을 직업으로 하고 있었던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이들은 천문학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꿈을 해석하기도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서 1:20, 2:2, 4:7, 5:7절에 나오는 박수, 술객, 갈대아 술사, 점쟁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아마도 이 동방박사와 같이 동일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이들은 자기 나라에서 정치적으로 또한 종교적으로도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중요한 인물들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조금 생각해 봐야 할 것은 하나님의 깊고 넓은 사람에 대한 은혜입니다.

1장에서는 우리가 이미 이방인으로 구원을 받고 예수님의 육체적인 조상이 되었던 4명의 여인에 대하여 생각하여 봄으로서 예수님이 오심은 온 인류의 구원과도 연관되어 있음을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28:19절에서는 우리에게 이 위대한 임무를 부여하십니다.

즉 그것은 전 인류에게 구원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탄생에 초대된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방의 사람들이 인류를 구원할 예수님의 탄생에 초대된 최초의 사람이었다는 것이 정말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의 비밀입니다.

이것에 관하여는 에베소서 2장 1절 이하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v11절 한 절만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이런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비 비밀입니다.


v2절에 있는 동방박사의 말을 잠깐 생각해 보겠습니다.

동방박사들의 질문입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Where is the one who has been born king of the Jews?"

여기의 질문의 요지는 자라서 유대인의 왕이 될 자가 어디에 있느냐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은 이미 왕으로 태어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태어나기 전부터 유대의 왕이었다는 말입니다.

평범하게 태어나서 왕이 되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조롱의 뜻이 담겨져 있지만.....................

마태복음 27:37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THIS IS JESUS, THE KING OF THE JEWS.

이 뜻을 이해하십니까?

예수님은 왕으로 태어나셨습니다. 태어나서 왕이 되신 것이 절대 아닙니다.


B. 2:3-6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여기에서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하면 만일 헤롯이 진정한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정말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아가 오실 것을 믿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면 왕이 태어났다는 말에 전혀 소동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동방박사의 이야기를 들은 헤롯왕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소식에 안심하고 기뻐한 것이 아니라 불안하게 생각하여 소동하였다고 합니다.

참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아로 기다린 것은 도대체 누구를 기다렸던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유대인이 아닌 헤롯 왕은 그렇다고 합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까지 헤롯과 함께 왜 소동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분명히 메시아를 즉 새로운 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온 예루살렘이라 함은 일반 백성들 모두를 포함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최소한도 당시 예루살렘의 종교적인 지도자들입니다. 성경에 대하여 누구보다 지식이 풍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새로운 메시아가 오시면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날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미 개인적으로 왕의 나심을 헤롯에게서 들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태어나신 메시아를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걱정하며 소동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들이 기다렸던 메시아는 누구이며 그 메시아가 어떻게 오시어야 그들은 그를 정말 환영했을 까요?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이 다시 이 세상에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정말 예수님이 이 세상에 재림하시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고 그리고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의 그 소동을 우리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예언하였던 사람들의 말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소동하였습니다.

문제는 정말 예수님께서 오늘 재림하신다고 하면 과연 누가 예수님을 환영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혹시나 예수님의 나심에 헤롯과 온 예루살렘이 소동한 것과 같은 소동이 또 다시 생겨나는 것은 아닐까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사건입니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당시 예루살렘의 두 종교적인 그룹이 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그리고 서기관들입니다.

대제사장들은 당시 사두개파 사람들이었으며 이들은 메시아를 기다리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서기관들은 본래 성경을 필기하는 사람들이었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해석하고 실생활에 적용, 그리고 가르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은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헤롯은 아마도 성경에 관하여 지식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메시아가 어디에서 출생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는지를 이 두 종교지도자들에게 조사할 것을 명령합니다. 당시 예수님의 출생 이전의 유대 사람들은 미가 5:2절의 말씀이 장차 오실 메시아의 출생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미가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But you, Bethlehem Ephrathah, though you are small among the clans of Judah, out of you will come for me one who will be ruler over Israel, whose origins are from of old, from ancient times."

마태복음 2:6입니다.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But you, Bethlehem, in the land of Judah, are by no means least among the rulers of Judah; for out of you will come a ruler who will be the shepherd of my people Israel.'"


마태복음에서는 미가복음에서는 기록이 없는 메시아의 새로운 역할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메시아는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의 목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목자는 구약에서 하나님이 이 세상 사람을 다스리시며 돌보아 주시는 이미지로서 자주 사용되었던 단어입니다(에스겔 34장). 또한 목자라는 말은 인도하심을 내포하고 있으며, 돌보심, 불쌍하게 여기시는 마음을 의미합니다(마가복음 6:34).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모든 왕에게 요구했던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목자로서 돌보아 주기를 바라고 원하셨던 것입니다(사무엘하 5:2)


예수님을 왜 믿습니까?

다시 묻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 주시기를 바라고 원하고 있습니까?

왕으로서의 예수님을 원하시고 있습니까? 아니면 목자로서의 예수님을 원하십니까?

무엇을 지금 기도하시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지금 해주기를 기도하시고 계십니까?

정말 정리 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 너무 막연하게 예수를 믿습니다.

믿으면 좋겠지 그래 그냥 믿고 보자 믿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던데...... 이것입니까?


우리가 기억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4-6절을 보면 헤롯왕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알 수 있었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가 있었습니다.

동방박사로부터 소식을 듣고 그리스도가 어디에서 태어나기로 되어 있었는지를 알아보게 명령을 하여 메시아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이들 제사장과 서기관으로부터 메시아에 관하여 성경에 무엇이라고 쓰여져 있는지에 대하여 매우 자세히 들었을 것입니다.

저는 아마도 하나님이 헤롯을 구원으로 초대하는 마지막 말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헤롯은 받아드리기를 거절합니다.

그리고 메시아를 죽이려 합니다.

동방박사와 헤롯왕은 같은 초대를 받았습니다.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머-어-언 거리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초대에 동방박사들은 응하였고 헤롯은 응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차이가 무엇입니까?

이것을 요한복음 1:11-12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우리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을 거절하고 이방인들 동방박사 그리고 오늘날의 우리를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은 왜 예수님을 영접하고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아가 오셨는데 실제로는 거절합니다.

이것은 참 이해하기 어렵고 이상한 현상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또 어떤 민족보다도 더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어느 민족보다도 더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던 사람들이 이 백성이었습니다.

바리세인이 누구이며, 서기관이 누구이며, 제사장들이 누구입니까?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바로 이것에 있습니다.

왜 이런 사람들이 자기들을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를 거절했느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왜 그들이 그렇게 기다렸던 메시아를 자기들 손으로 죽였습니까?

왜 거절하였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죽였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이 기다리는 그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습니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예수님은 채워 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이 믿는 예수님은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다 채워주실 분이라고 생각하시어 믿고 의지하시고 계십니까?

제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도에서 가장 못 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우리가 이것을 하는데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도와달라는 말이 어디에서 우리가 배워왔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습관적으로 도와달라는 기도를 참 많이 하고 있습니다.

물론 영어에 헬푸미(Help me)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말에서 혹시 나오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이 말에는 이런 뜻도 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물에 빠진 사람이 help me help me 합니다.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우리에게 주었던, 조금 뉴-에지 영화이기 때문에 그렇기는 하지만, 제목이 사랑과 영혼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잊혀지지 않는 장면은 죽어 가는 남편을 팔에 안고 여자가 절규하는 말이 이런 말이었습니다. "any body helps us" 이 말이 그냥 우리를 좀 도와주세요 뜻도 되지만, 이 절규의 뜻은 "누가 우리를 살려주세요" 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합니다.

이 말의 뉘앙스가 나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치 나 혼자도 할 수 있는데 하나님이 조금 그것도 아주 조금 도와주시면 내가 쉽게 무슨 일이라도 다 할 수 있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자인 루터는 인간의 이런 현상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 하나님이기를 원한다.’

이 말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종이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즉 기도라는 주문으로 매우  쉽게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가 원하는 어느 때에나 불러내어서 항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분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믿음이 좋으면 그 만큼 그런 현상이 더욱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기도하면 무슨 기도든지 다 하나님이 들어주신다.

그렇습니까?


이것은 마치 이것과 같습니다. 문지르면 금방 나타나서 문지르는 사람에게 무엇이든지 다 해주는 알라딘 램프의 거인처럼....

문제는 이런 욕심이 충족되지 않으면 우리는 다 메시아를 거절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정말 믿습니까?

정말 생각하시고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또 이해 못할 사람들이 이곳에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이냐 하면 제사장 그리고 서기관들입니다.

헤롯은 사실 순수한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합시다. 그러나 최소한도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예언을 잘 알고 있었던 이 사람들은 최소한도 그리스도를 찾아와 인사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그리스도가 태어났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까?


우리가 정말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거절하고 십자가에서 죽인 사람들은 저 무지한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백성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자부하였던 이스라엘 사람들이었고, 앞장에서 이것을 선동하였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었던 제사장, 서기관, 그리고 바리세인들이었습니다.


왜 예수님을 믿습니까?

왜 하필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하나님께 개인적으로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C. v7-12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쌔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헤롯왕은 제사장들과 서기관으로부터 베들레헴 어디에서 메시아가 태어날 것이 예언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  동방박사를 조용히 불러 자세하게 물은 다음에 베들레헴에 그들을 보내며 왕으로 태어난 아이를 발견하게 되면 알려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헤롯은 아이에게 경배할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즉 그는 나쁜 마음으로 메시아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헤롯의 음모를 처음에는 동방박사들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꿈에 나타난 경고에 의해 이를 알고 이들은 다른 길로 자기들의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반응행동에 대하여 잠깐 생각해 보겠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만난 후에 취한 행동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자마자 경배한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세상과 예수의 만남에 대한 것입니다.

동방박사를 만날 때의 예수님은 어린아이였습니다.

유아용 침대 위에 누워있는 예수님은 그를 찾아온 동방박사들에게 어떤 현명한 이야기를 하거나, 또는 어떤 기적도 보여주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동방박사들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이를 보는 바로 그 순간에 엎드려 경배하였고, 보배합을 열어 귀한 예물인 황금, 유황, 몰약을 드립니다.


우리가 주의하여 볼 것은 이 경배입니다.

이 경배라는 하나님에게만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4: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경배를 동방박사에게서 받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저자는 여기에서 그리고 28장 9절과 그리고 28장 17절에서도 예수님이 경배를 받는 사건을 보여줌으로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경배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 경배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을 만난 일이 없거나, 예수님을 만났어도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사람은 그것에 비하여 많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정말 묻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까? 예수님도 믿습니까? 하나님께 경배하십니까?

예수님께도 경배하십니까?

이사야60:3입니다.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시편 72:11입니다.

만왕이 그 앞에 부복하며 열방이 다 그를 섬기리로다

예수님은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경배합니다.


D. v13-15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천사가 동방박사들이 떠난 후에 요셉에게 나타나 가족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난 할 것을 종용하고 있습니다. 헤롯왕이 아기를 죽이려 하기 때문입니다.


애굽은 오랜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의 피난처였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 애굽에는 유대 백성 백만 명 이상이 살았다고 하는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가 수세기 동안 유지되고 있었고, 구약 시대에도 애굽은 항상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험에 처하면 그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였던 곳이었습니다(창 12:10, 왕상 11:40, 왕하 25:26, 슥 10:10). 천사의 경고를 들은 요셉이, 물론 명확한 천사의 명령이 있기는 하였지만, 피난처를 애굽으로 정하고 그곳의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 틈에 숨기 위하여 내려 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조금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며 이스라엘 백성과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어째서 겨우 한 나라의 왕인 헤롯의 위험을 피하여, 이러 저리 도망 다녀야 하는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도망도 밤에 몰래 도망합니다. 얼마나 급했으면 사방이 어두워져서 얼굴을 알아보지 못 할 밤에 도망을 하여야 합니까?


만일 조금이라도 이러하였다면 얼마나 폼이 나겠습니까?

그것은 낮에 도망하더라도 신비한 빛이나 어떤 초자연적인 기적적인 현상이 나타나 예수님과 그 가족이 도망가는 것을 다른 사람이 발견하지 못하게 한다거나 .......

그러나 세상을 구원하실 구세주이신 왕 예수는 밤에, 그것도 겨우 어두움을 이용하여 도망가다니, 참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질문합니다. 왜 예수님을 믿습니까?

예수님은 어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를 죽이려고 하는 헤롯의 위협에도 자기 스스로 자기를  지키지 못하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을 왜 믿습니까?

우리는 이 신비한 비밀을 이해 하셔야 합니다.

이것은 이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행위가 결국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것이 되었습니까? 

이것이 이해가 되십니까?

정말 신비함입니다. 영어로 Mystery입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면서 생각했던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자^^ 이제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 나에게는 이제부터 모든 나쁜 일, 그리고 슬픈 일, 또  불행한 일은 이제 더 이상 나에게 생기지 않는다.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하사, 항상 행복한 일만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하시어, 내가 나가나 또 들어가나 항상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휴^^ 그런데 살아가면서.........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요셉과 예수님은 애굽에서 헤롯이 죽기까지 머물러야 했습니다.   

여기에서 v15절의 말씀을 잠깐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은 호세아 11장 1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조심하여야 할 것은 호세아에 있는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 예수를 애굽에 보내어 다시 그곳으로부터 불러낸 것이 아니라 단지 미리 이런 일이 있을 것임을 호세아가 알아 예언하였던 것이 이렇게 되어서 그 예언이 이루어졌다는 말입니다.

잘못 생각하면 예언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임의로 맞추고 있는 것으로 오해 될 수 있어 잠시 부언하였습니다.


E. v16-18입니다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 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우리가 조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 예수님 때문에 죽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헤롯에게 죽임을 당한 두 살 이하의 아이들의 숫자가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이들이 죽은 이유는 단하나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이 태어난 베들레헴에 예수님의 탄생과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다는 바로 그 이유 대문입니다.


세계의 역사를 보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어야 했었습니다. 순교였습니다. 물론 이러한 사람들의 죽음을 분명히 하나님께서 큰 상급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들을 예수님을 믿고 또 예수님을 사랑했던 사람들입니다.

본인들이 결정하여 선택한 길이었습니다.


문제는 선택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도 모를 이러한 어린아이들의 죽음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합니까? 몇년전에 일어났던 연합국과 이락간의 전쟁을 보면서 느꼈던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군인과 어른들이야 그렇다고 칩시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입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결정한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런데도 이들은 영문도 모른 체 죽어야 하고 다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그 의미를 제일 처음 물어야 하겠습니다. 정말 저는 지금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겠으니 까요. 전쟁이 나면 제일 비참한 사람은 어린아이와 여자들인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 성경공부를 올리면서 정말 기도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아프칸에서 순교하신 배형규 목사님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위로하시며, 그의 영혼에 안식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기 전 약 600년 전에도 이러한 비참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바빌론(이락)의 가장 강력한 왕 느부갓네살(605-562 BC)은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당시 유다의 왕인 여호와긴과 그 신하를 사로잡고, 여호와 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바빌론으로 가져갔으며, 예루살렘의 백성과 모든 방백과 용사 일만 명, 그리고 공장과 대장장이를 597 BC에 바빌론으로 사로 잡아갔습니다(왕하 24:10-17).


라마는 예루살렘 북쪽 약 7Km에 있는 작은 도시로 바빌론으로 끌려가는 포로들이 이 도시를 지나갔다고 합니다. 이 근방에는 야곱의 사랑하는 아내이며, 요셉과 벤자민의 어머니인 라헬이 벤자민을 낳다가 죽어서 묻힌 무덤이 있다고 합니다.

v18절은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가는 유대 백성을 바라보며 힘이 없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힘없이 바라보는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어머니 라헬이 느꼈던 슬픔을, 예수님 때문에 헤롯왕에게 죽어 가는 많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자기들의 힘없음을 한탄하며 느껴야 했던 베들레헴의 어머니들이 겪어야 했던 그 슬픔과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F. v19-23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오니라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 부친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헤롯왕의 잔악성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것만은 아닙니다.

사실 성경에 기록된 이 헤롯의 잔악상은 다른 기록에서는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저지른 다른 흉악한 행위를 비교해 보면 아무 죄도 없는 이 아이들을 살해했다는 것도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헤롯은 하스모니안(Hasmonean: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전에 시리아의 압제에 반란을 일으킨 유대인의 왕국)왕조가 멸망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모두 처형하였고, 또 산헤드린에 속한 수백 명의 사람을 처형하였으며, 심지어는 자기 아내 마이안느와 또한 그의 어머니 알렉산드라, 그리고 그의 친아들, 안티파터, 아리스토부로스, 알렉산더를 자기 자리를 넘본다고 하여 처형하였으며, 심지어는 자기가 죽어갈 때에는 예루살렘에 있는 귀족들을 경기장에 불러 모아서는 자기가 죽는 순간에 모두 처형할 것을 지시하기도 하였다고 할 정도로 잔인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가 죽은 후 왕국은 셋으로 갈라지게 되었고, 헤롯 필립은 북쪽에 있는 트라코니티스의 왕이 되었고, 둘째 아들 안티파스는 갈릴리와 페레아로 알려진 요르단 윗 쪽의 왕이 되었으며, 알케라우스(마 2:22 절의 아켈라오)는 이투메니아, 유대, 그리고 사마리아를 통치하는 왕이 되었습니다. 알케라우스는 6BC에 로마에 가서 유대의 왕으로서 로마의 인준을 받으려 하였으나 취임하여 2년 동안 그의 통치기간에 그가 하였던 많은 악한 행위가 로마에 알려져 왕의 지위를 잃어버리고 추방되었습니다.

이 왕이 아직도 왕위에 있을 때에 요셉은 이 왕을 무서워하여 베들레헴으로 돌아가지 않고 덜 악하였던 안티파스가 통지하는 갈릴리의 나사렛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나사렛 동네는 누가 복음에 의하면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호적을 정리하기  위하여 가기 전에 살았던 고향입니다. 그래서 물론 천사의 지시도 있었지만 요셉과 마리아는 그곳 즉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v23절의 예언은 사실 성경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다만 학자들이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이사야 11:1절에서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기에서 가지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네제르 가 나사렛과 발음이 비슷하여 아마도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온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한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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