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 육체는 히브리어로 바싸르(ר꘎ꔯ)라고 하고 헬라어로는 사르크스(καρδία)라고 하여서 몸과 반드시 구별을 한다. 몸은 육체에 무엇인가가 더하여진 상태인데 그것은 다름 아닌 마음이다. 즉 육체는 글자 그대로 고깃덩어리의 상태로서 그곳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본능과 정욕의 산실일 뿐이며 사람의 영이 담겨져 있기에는 부적합한 장소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지은 육체의 어딘가에 사람의 영을 담아둘 장소를 마련해 주셨는데 그곳이 바로 마음인 것이다.
- 마음은 히브리어로 레브(בꗝ)이며 헬라어로는 카르디아(καρδία)라고 하는데 육체 속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물질적인 공간이 아닌 비가시적이고 비물질적인 존재이므로 특정한 위치를 구별해 낼 수는 없으나 사람의 영이 담겨져 있는 장소이며 구원받은 자에게는 성령도 함께 계시는 곳(고후 1:22, 갈 4:6)도 된다.
-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사람은 몸(게쉠, 소마)과 영(루아흐, 프뉴마)으로 이루어지는데 몸과 영이 결합됨으로써 목숨이 있는 상태 즉 생명의 존재(네페쉬, 프쉬케)가 되며 몸에서 영이 떠나는 상태가 죽음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몸은 다시 육체(바싸르, 사르크스)와 마음(레브, 카르디아)으로 구분되며 사람의 영이 거하는 곳은 마음이다. 이를 간단한 표로 나타내 보면 다음과 같다.
- 구 분
- 히 브 리 어
- 헬 라 어
- 목숨(생명)
- 네페쉬(Ꚅꗾ)
- 프쉬케(ψυχή)
- 영
- 루아흐(ꖏוּר)
- 프뉴마(πνεύμα)
- 몸
- 게쉠(םꚆꕃ)
- 소마(σώμα)
- 육체
- 바싸르(ר꘎ꔯ)
- 싸르크스(σάρξ)
- 마음
- 레브(בꗝ)
- 카르디아(καρδία)
- * 몸 + 영 = 생명, 목숨(살아있는 사람으로 존재)
- * 몸 - 영 = 죽음(죽은 육체만 남아서 소멸됨)
- * 몸 = 육체 + 마음(영이 거하는 비물질적 공간)
- * 몸 - 영 = 죽음(죽은 육체만 남아서 소멸됨)
- 삼분설의 오류
- 살전 5:23에서 ‘혼’으로 번역한 프쉬케(ψυχή)는 ‘목숨’의 오역이다. 즉 삼분설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영과 몸 이외에 혼이라고 하는 별도로 구별되는 어떤 제3의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영과 몸이 결합하여 이룬 상태를 ‘목숨’ 또는 ‘생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바울이 여기서 그와 같이 표현한 까닭을 알기 위해서는 당시의 정황을 살펴보아야 한다.
- 데살로니가 전서는 당시에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가지고 있던 잘못된 종말관과 주님의 재림에 대한 오해를 해결해 주기 위하여 사도 바울이 그들에게 보낸 편지인데 특히 4장과 5장에서는 집중적으로 이러한 주제에 대하여 교훈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데살로니가 전후서를 다 읽어보면 당시의 데살로니가 교인들 중에는 주님이 갑작스럽게 오시리라는 말씀을 오해하여 이 땅에 이미 임하여 완성으로 향해가고 있는 하나님 나라에서의 신실한 삶보다는 다가올 종말을 고대하며 들떠있는 자들이 많았었던 것 같다(살후 2:2).
- 당시의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기다리는 종말과 주의 재림은 이 세상 끝에 있을 최후 정점의 종말을 기대하는 것이었으나, 바울의 교훈은 최후 정점의 종말이 아닌 구약의 모든 예언서와 신약(마 24:2-3)에서도 예언되어졌던 ‘주의 날’에 대한 것이었다.
- 그 날은 ‘여호와의 두려운 날’이요 ‘야곱의 환란의 날’인 예루살렘 멸망(AD 70년)의 날인데, 당시로 볼 때 그 날까지 대부분 생존이 가능할 것으로 여겨지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십 수 년 이내에 실제적으로 겪게될 상황이므로 매우 긴장되고 실감 있게 묘사한 것이다.
- 그러므로 바울은 종말을 맞게될 자들로서 ‘우리 살아 남은 자’라는 표현을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으며, 살전 5:23에서는 당시의 데살로니가 교인들인 ‘너희들’을 향하여 주께서 예루살렘 심판의 심판주로서 오실 때에 ‘영과 몸’ 곧 ‘목숨(프쉬케)’을 보존하고 있기를 원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 이는 주님이 문자적으로 지상에 강림하시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심판을 집행하시는 심판주로서의 엄위를 가지고 영적으로 오시는 상태(마 26:64, 살후 1:7-8)를 말하며, 그 날이야말로 육적 이스라엘에게는 심판 받는 경악의 날(사 13:9-16)이 되겠지만 영적 이스라엘인 너희에게는 영원한 나라가 세워지는 환희의 날(마 24:31, 욜 3:16-17)이 될 것이므로 그 때까지 너희들이 ‘목숨’을 보존하고 있으면 좋겠다는 바울의 소원을 말한 것이다.
- 종말에 대해서는 예언과 묵시기록의 두드러진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상징(Symbol)과 메타포(Metaphor)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오역(誤譯)인 눅 21:35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좀더 구체적으로 강론하기로 하고, 다만 여기서는 심판(크리시스, κρίσις)과 재림(파루시아, παρουσία)에 다중적(多重的)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말해둔다.
- 이상에서 살펴본 것으로부터 알 수 있듯이 성경은 불변의 진리이며 모든 세대의 신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으로서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영적 교훈을 담고 있지만, 서신서들은 특별히 수신자들이 속한 교회와 공동체에 대하여 당시의 정황에 부합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성경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사람의 죽음의 원인
- 이제까지 사람의 구조를 살펴본 바로는 사람의 몸에 영이 결합되어 사람이 사는 것이며 사람의 몸이 더 이상 영을 담아둘 그릇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면 영은 그 몸을 떠나게 되고 남은 육체는 소멸되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사람의 몸은 원래 일정 기간이 지나면 기능을 더 이상 못하도록 창조되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생겼다. 즉 하나님께서 사람을 처음부터 반드시 죽을 존재로 창조하셨는가 하는 문제이다.
-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라는 말씀을 보면 사망(따나토스,θάνατος )과 영생(조에 아이오니아,ζωή αἰωνία)을 대비시키고 있으며 또한 사망의 이유를 밝히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이 저지른 죄(하마르티아,ἁμαρτία)의 대가를 치러야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는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죽음이 오지 않았다는 말도 되는 것이다. 하마르티아라는 말은 부정 접두어 아(?)가 과녁이라는 뜻의 마르티아(μαρτία)에 붙어서 된 말로 원 뜻은 ‘과녁을 맞추지 못함’이다. 이로 볼 때 하나님 뜻에서 빗나간 것이 죄인 셈이다.
- 한편 성경은 롬 3:23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고 함으로써 모든 인간이 죄인(하마르톨로스,ἁμαρτωλός)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왜 모든 인간들은 죄인이 되었는가?
- 그것은 롬 5:17-18의 말씀에서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 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라고 함으로써 인간들이 제각기 저지른 개별적인 죄가 아니라 최초 인간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그의 후손된 모든 자가 죄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사망의 결과를 낳은 그 죄는 무엇인가? 그것은 롬 5:19에서
-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 라는 말씀에는 불순종(아페이떼이아,ἀπείθεια)이 바로 죄라고 하고 있다. 사람이 만일 불순종의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영생할 수 있었다는 가정은 쉽게 할 수 있다.
- 창 2:16-17의 말씀을 보면
-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라고 함으로써 선악과(정확하게는 知善惡果)만 먹지 않는다면 죽지 않을 수 있는 길이 분명히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여기서 죽는다는 말씀은 글자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뜻인데 혹자는 하나님께서 ‘정녕 죽으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영이 죽는 것을 뜻한다고 하는 이도 있으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영이라는 것은 죽지 않는 존재이므로 영이 죽는 것이 아니고 다만 ‘영적으로 죽는다’고 말할 수는 있는데 그것은 ‘영의 타락’을 의미하는 것이다.
- 창 3:17-19에서도
-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 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라고 함으로써 불순종에 대한 대가로 저주를 받지 않았다면 흙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 영생의 기회 상실
-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이라는 물질로 몸을 만드시고 그 안에 영원히 소멸치 않을 존재인 영을 넣어주셨다. 인간이 그 상태로 영생하기에는 불완전하였지만 그렇다고 필연적으로 죽음을 맞이할 것도 아니었다. 첫 인간 아담에게는 영생과 죽음 중에서 택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는 불순종의 죄를 범함으로써 하나님께서 미리 경고하신 대로 죽을 몸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몸은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만 하며 영은 몸을 떠나 음부(쉐올,לוֹאꚉ또는 하데스,ἅδης)에서 심판 때까지 대기하고 있다가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할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불순종의 대가는 그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그의 모든 후손들에게 죽을 몸을 물려줌으로써 전 인류에게 사망의 선물을 안겨주고 만 것이다.
- 인간의 타락 후 하나님께서 그들을 에덴 동산에서 내어쫓고 다시 그룹들과 화염검을 두어 생명 나무로 가는 길을 지키게 하신 것은 창 3:22의 말씀처럼 타락한 인간이 영생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음이다. 그러므로 만일 인간이 선악과 대신에 생명과를 먹었다면 고전 15:44에서와 같은 죽지 않는 신령한 몸(소마 프뉴마티코스,σώμα πνευματικός)이 되어 영과 결합함으로써 영생하는 존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 다시 말해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지 아니하고 생명과를 먹은 후 영생의 존재가 되어서 창 1:28에서 최초에 주신 명령에 따라 에덴 동산에서 많은 자손을 낳고 번창하였더라면 하나님께서 그 일정한 수의 경건한 자손(말 2:15)을 얻으신 후에 그들로 영원한 하늘 나라에서 영원히 함께 살아가게 하셨을 것이다.
- 그러나 첫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이 죽게 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충만한 수의 인간(롬 11:25)을 얻으시기 위해서는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뤼트로시스,λύτρωσις, Atonement)의 죽음을 통한 희생 제사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요일 5:20에서 말씀하듯 영생 그 자체이신 분(요 11:25, 요 1:4, 롬 6:23)이므로 죽으실 수가 없는 분이다. 따라서 하나님이신 주님은 일시적으로 피조물인 인간의 몸을 가지셔야 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에 이 모든 일들을 다 알고 계셨지만 인간의 타락을 비롯한 이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작정하심으로 말미암아 비롯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작정하셨다는 것은 쉬운 말로 각본을 만들었다는 것인데 만일 그렇다면 인간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미 정해져 있는 대로 각본에 따라 타락한 것이며 현존하는 모든 악도 하나님께서 조성하신 것이고 인간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드리기 위하여 죄를 짓는 것일 따름이므로 인간의 행위에 따라 심판하신다고 하는 하나님의 공의의 근거가 없어지고 말게될 것이다. 또한 각본에 따라 불순종한 인간들에 대하여 그 대가로 불못 형벌에 처하신다고 하는 것 역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 하나님께서 ‘미리 다 알고 계시다’는 것과 ‘작정하셨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말인 것이다.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여 계시므로 인간에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구분되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는 불변하는 영원한 현재에 오직 동시적 현재로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는 시간상의 순서라는 것이 없고 모든 것이 동시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의 형질과 각 인생마다의 최종적인 결과를 미리 다 알고 계시므로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미리 알고 계신 그대로 모든 것이 같은 결과를 이루도록 역사에 개입하시는 것이다.
- 따라서 ‘작정’이나 ‘예정’이란 용어는 인간의 이해를 돕기 위한 특정한 언명일 뿐이며 시공을 초월하여 영원히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마치 시간의 흐름 안에서 논리적 순서에 따라 섭리하시는 분으로 제한시키는 것은 매우 불경스런 생각이 되고 만다.
- 이제 우리가 이러한 충분히 가능한 추론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지식은 인간의 타락을 비롯하여 믿고 순종함으로써 영생을 얻는 일과 불신의 결과로 멸망 받는 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미리 정해진 것이라고 함으로써 아무리 교묘하게 말을 바꾼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는 운명론적 신학적 사고의 오류를 재고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구원과 예정에 관해서는 신약편 요 17:2의 오역을 다루면서 더 자세히 논의하기로 하겠다.
- 마음은 히브리어로 레브(בꗝ)이며 헬라어로는 카르디아(καρδία)라고 하는데 육체 속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물질적인 공간이 아닌 비가시적이고 비물질적인 존재이므로 특정한 위치를 구별해 낼 수는 없으나 사람의 영이 담겨져 있는 장소이며 구원받은 자에게는 성령도 함께 계시는 곳(고후 1:22, 갈 4:6)도 된다.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메모 :
'성경난해구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구약(舊約)의 오역(誤譯)/복있는 사람은 (0) | 2010.06.07 |
---|---|
[스크랩] [난해]살렘왕 멜기세덱은 누구일까? (0) | 2009.02.24 |
[스크랩] 안식일은 폐지된 율법입니다 (0) | 2008.11.16 |
[스크랩] 요나의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도망간 이유 (0) | 2008.11.10 |
[스크랩] 다윗의 침상을 띄우는 눈물이 죄를 회개하는 것인가? (0) | 2008.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