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입다가 딸을 번제로 드렸는가?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입다가 미스바에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그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슬프다 내 딸이여 너는 나로 참담케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이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딸이 그에게 이르되 ...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용납하소서 내가 나의 동무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 하겠나이다....아비가 그 서원한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고 죽으니라 이로부터 이스라엘 가운데 규례가 되어 이스라엘 여자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더라”(삿11:30~40).
이스라엘의 사사 입다는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자 그들과 싸우러 나가면서 하나님께 서원하기를 하나님이 그들과 싸워 이기게 하시면 싸움에서 돌아올 때 누구든지 집 문에서 나와서 그를 영접하는 자를 번제로 드리겠다고 하였다. 그 가 싸움에서 이기도 돌아올 때 그의 무남독녀 딸이 소고를 치며 춤추고 나와 그를 맞았다. 이에 입다는 옷을 찢으며 슬퍼하였으나 서원한 대로 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기사는 전통적으로 실제로 입다가 자기 딸을 번제로 드린 비운의 사건으로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12세기 경에 이르러 유대인 랍비 킴치(Kimchi)가 새로운 해석을 제기하였다. 그는 입다가 실제로 딸을 번제로 드린 것이 아니라 성전에서 평생 처녀로 봉사하도록 바쳤으며 이는 후손을 잇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매우 애통한 일이었고 이 일에 대해 이스라엘 여인들이 매해 그녀를 방문하여 그녀의 운명을 위해 애곡하였다고 하였다.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해석을 따르게 되었다.
이러한 해석은 근본적으로 인신 제물을 금하신 하나님의 명령과 또 본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문법적 해석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실제로 하나님은 인신 제물을 가증한 이방의 풍속이라고 언급하시면 그것을 강력히 금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우거한 타국인이든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거든 반드시 죽이고 돌로 칠 것”(레20:2; 18:21참조)이라고 하였고 “그 자녀를 불살라 그 신들에게 드”(신12:31)라는 일은 가증한 일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성경은 남방 유다의 12대 왕인 아하스가 “이방 사람의 가증한일을 본받아 그 자녀를 불”(대하28:2)살랐다고 기록하고 있는 반면에 16대 왕인 선한 왕 요시아는 개혁사업으로 사람을 몰록에게 드리는 산당의 석상들을 깨어 벼렸다(왕상23:10~14)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선지자 예레미야도 “자기 아들들을 바울에게 번제를 불살라 드”리는 일은 하나님이 “명하거나 말하거나 뜻한 바가 아니”(렘19:5)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였다. 엘렌지 화잇도 이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왜곡된 개념으로 말미암아 이교의 민족들은 그들의 신들의 은총을 얻는 데 인간 제물이 필요하다고 믿게 되었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 형태의 우상 숭배 하에서 미우 끔찍스러운 진안한 행위들이 저질러졌다....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도 큰 배교가 있었을 때에는 이러한 가증한 일들이 다소 행해졌다.”(pp.336-338).
또한 입다의 딸의 죽음을 알리는 기사도 입다가 실제로 딸을 번제로 드리지 않았다고 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왜냐하면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37절)라는 구절과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고 죽으니라”(39절)이다.
더 나아가 이런 해석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다른 문맥적 증거들도 제시한다. 즉 입다는 성격상 결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서원할 인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길르앗 장로들이 그를 데리러 왔을 때에도 매우 신중한 반응을 보였었다(7,9절) 그런 입다가 결코 그런 엄청난 일을 함부로 서원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입다는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 전체를 자세히 알고 있었으므로(14-26), 오경에 기록된 율법도 잘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었으며, 그런 입다가 율법이 금하고 있는 그런 죄악적인 서원을 하였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주장들은 직접적인 문맥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문맥의 증거는 분명히 입다가 그의 딸을 번제로 드렸음을 나타내고 있다.
첫째 입다는 분명히 “나를 영접하는 그는...내가 번제로 드리겠나이다.”(31절)고 하였다. 물론 “평생 처녀 성전 봉사설”을 주장하는 주석가들은 “나를 영접하는 그를”이라는 구절을 “나에게 오는 그것”이라고 번역하여 입다가 “동물”을 번제로 드리겠다고 서원하였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한글 개역성경 번역대로 “영접하는”이라는 단어는 분명히 사람에게만 사용되는 용어이다.(창18:2; 출18:7; 왕하1:6등)
둘째 입다가 자기를 맞으러 나온 딸을 행해 “참담케 하는 자...괴롭게 하는자”라고 하면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35절)라고 한 것은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표현이다.
셋째 입다의 딸이 두 달 동안 친구들과 “애곡하였다”는 것도 같은 상황을 나타낸다(37,38).
넷째 그 후 입다는 분명히 “그 서원대로 딸에게 행하”(39절)였다.
다섯째 그리고 이스라엘 여자들이 매해 나흘씩 입다의 딸을 위하여 애곡하였다(40절)
더군다나 이 시대에 성전 봉사는 처녀만이 할 수 있다는 어떤 규례도 없었고, 처녀가 유부녀들보다 더 거룩하게 여김을 받는다는 어떠한 율레, 규칙, 관습, 사례도 없었다. 유명한 여선지자 드보라나 훌다도 결혼한 여인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규칙이 있어 입다의 딸이 평생을 처녀로서 성전에서 봉사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 일 때문에 친구들과 함께 두 달 씩이나 애곡하고 또 이스라엘 여인들이 매년 나흘씩 애곡하였다는 것은 너무나 부자연스러운 반응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입다가 매우 신중한 사람이고 또 율법도 자세히 알고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가 이런 서원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가장 신중하고 온유한 사람 모세도 분노한 적이 있었고, 또 율법을 모세 다음으로 잘 알고 있을 아론도 범죄하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입다도 지금 전쟁에 나가는 위급한 상황에서 성급한 서원을 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더군다나 그는 일찍이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인신 제물이 성행하던 시리아 땅인 놉으로 도망하여 거기서 잡류들과 어울린 적이 있기 때문에(삿11:3), 그곳에서 긴급한 때에 인신 제물을 신에게 바치는 아람인들의 종교에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이 사건은 결코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일은 아니었으나 성급한 서원의 결과로 딸을 제물로 바치게 된 입다와 또 아버지의 서원에 의해 처녀의 몸으로 제물이 된 입다의 딸의 비극적인 운명을 내타내고 있다. 물론 이것은 입다로서는 기업이 끊기는 것을 의미하였고, 입다의 딸로서는 모든 이스라엘 여인들의 소망인 “그 아들”을 낳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성경난해구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51. 엔돌의 신접한 여인에 의해 올라온 사무엘의 영이 어찌 정확한 예언을 하는가? (0) | 2008.08.30 |
---|---|
[스크랩] 50. 삼손의 힘은 머리카락에서 나왔는가? 아니면 나실인의 서약에서 나왔는가? (0) | 2008.08.30 |
[스크랩] 48. 해가 멈추어 낮이 길어진 것은 어떻게 이루어진 일인가? (0) | 2008.08.30 |
[스크랩] 47. 라합의 거짓말은 의로운 것인가? (0) | 2008.08.30 |
[스크랩] 46.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께서 가나안 진멸령을 내리실 수 있는가? (0) | 2008.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