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교회가 용서하면 하늘에서도 용서하는가?
요한복음 20:23.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문제.
예수께서 부활한 후 제자들에게 하신 말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죄 사하는 권세를 주셨는가?
오직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죄를 사할 수 없다(막2:5,7).
가톨릭은 이 말씀을 근거로 죄 사하는 사도들의 전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사제들에게 죄사하는 권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가톨릭의 신부에게 죄를 고백하여 사함을 얻는 것은 과연 성경적인가?
a. 요한복음 20:23은 해석하기 가장 어려운 구절 중의 하나이다.
해석의 열쇠가 되는 쟁점은 이 죄 사람의 약속이 선언적인가
혹은 실제로 죄 사함의 효력이 잇는가하는 것이다.
가톨릭에서는 주장하기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만 죄 사하는 권세를 주셨기 때문에
그 전통을 이어받은 가톨릭 신부에게만 죄 사하는 권세가 있다고 말한다.
이 구절이야 말로 교권과 고해성사제도의 근본이 되는 성경 절이다.
그러나 이 학설은 많은 반대를 받고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했을 때(20:19-23)
다락방에는 단지 11명의 제자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초기 교회가 제자라고 불렀을 때
꼭 예수님의 11명의 l제자만 가리키지는 않았다(요6:66; 눅24:33).
이 주장의 또 하나의 약점은 그 능력이 전승되어 내려왔다는
어떤 성경적 근가도 찾아볼 수없다는 것에 있다.
b. 그래서 일부 개신교 학자들은 예수께서 개인이 아니라
특수한 그룹에게만 말씀하셨기 때문에 오늘날이 교회가 죄사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리언 모리스(Leon Morris) 같은 학자는 설명하기를,
예수께서는 어떤 개인들에게 이 말씀을 한 것이 아니라 어떤 계층에게 말씀하신 것이며,
성령 충만한 교회는 어떤 죄가 용서 받을 있으며
어느 죄가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인지
선언할 권세가 있음을 말했다고 주장한다(The Gospel Acording to John, 849).
또 다른 개신교 학자들은 이 말씀에 대해 제자들이나 교회에 죄 사하는 권세를 준 것이 아니고,
회개하는 심령은 용서를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의 자비를 거역하는 사람들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을
교회가 가르쳐야 한다는 교회의 의무를 강조한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c. 그러나 아무리 교회라 하더라도
어떻게 오직 하나님만 가지고 있는 죄사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 고할 수 있을까?(막2:7; 눅7:48,49).
그리고 이 말씀이 실제로 죄사하는 효능을 인간이나 교회에 준 것이라면
왜 초기 교회에서 그런 권능을 사용한 예를 불 수 없을 까?
이런 문제들을 생각해 보면
요한복음 20:23의 말씀은 실제로 죄 사함이 이루어지는 효능적인 것이 아니라
선언적인 의미가 강한 말씀이라 하겠다.
즉 제자들 혹은 교회가 선포하는 복음을 받아들여 믿고 회개하는 자들은 죄 사함을 얻을 것이지만,
복음을 거절하는 자들은 죄 사함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d. 요한복음 20:23에 나오는 “사하여 질 것이요”와 “그대로 있으리라”는
두 동사는 각각 완료형 동사인데,
요한은 과거에 완료된 행동의 결과가 이미 현재에 미치고 있을 때 완료형을 썼다.
그것은 미래로 번역될 수 없다.
이러한 헬라어 완료형이 구문론을 살려 번역하면 20:23은 다음과 같이 번역될 수 있다.
“만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그 용서받음을 선언하면(복음을 전하면)
그들은 그 죄를 (하나님에게서) 이미 용서 받은 것이요,
만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그것을 그대로 두면(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그들에게 그 죄가(하나님에게 용서받지 못하고) 그대로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죄는 오직 하나님만 용서할 수 있기 때문에 용서하거나
용서하지 않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이고 제자들이나
교회는 하나님에게 용서받은 혹은 용서받지 못한 것을 선언할 뿐이라는 것이다.
요약
하나님은 죄 사하는 권세를 사람이나 교회에 준 일이 없다.
그러므로 본문 말씀은 교회나 개인이 죄를 사하고사하지 않는 권세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선언적인 의미로 쓰였다고 봐야 한다.
죄는 오직 하나님만 용서할 수 있기 때문에 용서하거나 용서하지 않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이고 제자들이나 교회는 하나님에게 용서받은
혹은 용서받지 못한 것을 사람들에게 복음으로서 선언할 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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