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변장하고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 활 쏘는 자가 요시야 왕을 쏜지라 왕이 그 신복에게 이르되 내가 중상하였으니 나를 도와 나가게 하라”(대하35:22,23)
요시야는 쇠락해 가는 남방 유다 왕국의 마지막 등불이었다. 그는 불과 8살에 왕위에 올라 부친 아몬과 조부 므낫세와는 달리 다윗의 길로 행하였다. 그는 재위 18년인 BC 621년에 율법서인 신명기서를 발견한 후 대대적인 부흥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고 우상을 일소하고 성지를 회복하고 군사력을 증강시켰다.
특히 신명기를 낭독하는 것을 듣고는 그 자신이 옷을 찢으며 회개하였으며 가나안 정착 이후로 가장 큰 유월절 절기를 지키게 하였다. 그래서 성경은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사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왕하23:25)고 하였다.
그런 그가 아직도 젊은 39세인 BC 609년에 쓸데없는 외교 분쟁에 휘말려 전사하고 말았다. 물론 이러한 비극의 원인은 조부 므낫세의 엄청난 죄악 때문이었다(왕하23:26~27). 그러나 역대하 35장의 본문에서는 그의 죽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잘못된 판단으로 전쟁에 참여한 결과라고 설명하고 있다. 어찌 요시야 같은 이가 그렇게 하였을까? 그는 왜 그런 어리석은 결정으로 죽음을 맞게 되었을까?
그것이 아마도 이방 왕인 느고의 입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었는가? 여하튼 역대개의 본문은 그의 죽음을 전하는 므깃도 전쟁 기사를 시작하면서까지 “이 모든 일 후 곧 요시야가 전을 정돈하기를 마친 후에”(대하35:20)라고 하여 요시야가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께 헌신하였음을 보여준다.
요시야가 최후를 맡은 소위 므깃도 전쟁을 바르게 이해하기 이해서는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 요시야가 유다를 통치하고 있던 그 시대에는 바벨론이 고대 근동의 신흥 패권 국가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바벨론은 이미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와 하란을 정복하였다.
그 후 앗시리아의 장군들이 앗수르-우발릿(Ashur-uballit)의 지휘 아래 갈그미스를 수도로 삼았다. 이에 애굽은 근동 아시아의 세력 균형을 깨뜨리는 바벨론의 등장을 억제할 목적으로 앗수르 왕국을 돕고자 갈그미스로 올라갔다. 그리하여 BC 609년 여름에 애굽의 바로느고는 대군을 이끌고 팔레스틴의 므깃도까지 이르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한글 개역성경의 “애굽왕 바로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agianst)하여”(왕하23:29)라는 번역은 잘못된 번역이다. 히브리어 전치사 알(ל)은 그 역사적 배경을 고려할 때 “치고자”(ahainst)가 아니라 “위하여”(on behalf)로 번역되어야 한다.그래서 표준새번역과 공동번역은 무두 “애굽왕 느고가 앗수르 왕을 도우려고”라고 번역하였다.
여하튼 이런 역사적 배경 속에서 요시야는 앗수르를 도우려고 올라오는 바로느고와 므깃도에서 맞섰다. 이는 애굽이 앗수르와 동맹하여 바벨론을 물리치면 팔레스틴에 대한 애굽의 지배권이 부활되고 결국 통일 히브리 왕국의 꿈이 위협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때 바로느고는 요시야에게 이렇게 말했다. “유다 왕이여 내가 오늘날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잇느뇨. 내가 오늘날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명하사 속히 하라 하였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노라”(대하35:21)고 하였다.
그러나 요시야는 이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 말을 무시했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여호와에 대한 열망이 너무 큰 나머지 여호와의 제지하시는 음성을 무시했는지도 모르겠다. 동기가 무엇 이였든지 간에 요시야는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변장하고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대하35:22)였다.
이때 요시야가 느고의 말을 듣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선민 국가의 왕이라는 자부심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것은, 마치 큰 부흥과 개혁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경견하고 영감적인 목사에게 어떤 세속적인 사람이 영적인 문제에 대해 충고를 할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것과 같다 .그러나 요시야는 바로느고의 입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했다. 사실 하나님은 전에도 이방의 왕들에게 기별을 주신 것이 있었다.(창12:17-20;20:3~7; 단4:1~3)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나귀를 이용하시어 경고를 주시기도 하셨다.(민22:28~31).
요시야가 비록 바로느고의 말을 듣지 않고 애통하게 전사하였지만 성경은 여전히 그를 의로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른다. 심지어 그의 죽음을 일찍이 하나님께서 여선지자 훌다의 입을 통해 예언한바 “내가 너로 너의 열조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곳 거민에게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가 눈으로 보지 못하리라”(대하34:28)는 말씀을 성취하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성경은 요시야 왕의 삶에 대해 심지어 이 므깃도 사건 이후에도 그가 “행한 모든 선한 일과 그 시종 행적이”(대하 35:26) 기록되었다. 는 말로 마무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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