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난해구절

[스크랩] 53. 웃사가 흔들리는 하나님의 궤를 붙잡은 것이 죽을 죄인가?

춘천 김상호 2008. 8. 30. 08:21

53. 웃사가 흔들리는 하나님의 궤를 붙잡은 것이 죽을 죄인가?

 

저희가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저희가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나올 때에 아효는 궤 앞에서 행하고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잣나무로 만든 여러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주악하더라 저희가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그곳에서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삼하6:3~7).

 

 다윗은 모든 이스라엘의 지파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이후로 하나님의 궤를 아비나답의 집에서 예루살렘에 있는 새 성소로 옮기고자 하였다. 이 궤는 일찍이 사무엘 시대 때,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겼다가 다시 찾아온 이후로 기럇여아김의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 거하여 왔었다(삼상7:1~2).

 

 다윗은 이 일을 위하여 이스라엘에서 뺀 무리 3만 명을 소집하였다. 이는 아마도 법궤를 운반하는 이 일을 큰 행사로 치르고자 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많은 악기로 주악하며 이일을 기뻐하였다.(삼하6:5)

 

 그런데 문제가 발생되었다. “저희가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미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 하남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그곳에서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삼하6:6~7). 하나님께서 흔들리는 하나님의 법궤를 붙잡은 웃사에게ㅔ 상은 주지 못할망정 오히려 죽음의 징벌을 주신 것은 무슨이유인가? 도대체 웃사의 잘못은 무엇인가?

 

 먼저 이 사건의 최초 원인은 다윗에 의해 제공된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법궤를 옮길 때는 거룩하심이 훼손되지 않도록 긴 장대를 이용하여 레위인 중 고핫 자손이 어깨로 메어야만 한다는 것이 이미 제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민4:15). 그러나 다윗은 이 때에 장대를 이용하여 고핫 자손들이 메고 가게 하지 않고 소들이 모는 “새 수례”를 이용하였다.

 

 아마도 이렇게 한 것은 다윗이 이 행사를 거창하게 치르고자함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다른 성소 기구를 옮길 때에는 게르손 자손과 므라리 자손에게 수례와 소를 주어 그 일을 하게 하였다(민7:6~8). 그러나 “고핫 자손에게는 주지 아니하였으니 그들의 성소의 직임은 어깨로 메는 일을 하는 까닭이었”(민7:9)다. 그러므로 법궤를 옮길 때에는 반드시 어깨로 메고 가게 해야 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여호와께 묻지 않고 오히려 이 일에 잇어서는 “천부장과 백부장 곧 모든 장수로 더불어 의논”(대상13:1)하였다. 결국 다윗은 하나님의 방법대신 부하들과 자신의 생각에 따라 그릇된 방식으로 일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방식 자체에 대해서 문제를 삼으셨다는 기록은 없다.

 

 사실 웃사의 행위는 인간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이해가 가는 행위이다. 그는 분명히 하나님의 궤를 보호하기 위해 붙잡았다. 그러나 그 행위는 하나님의 율법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이었다.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시대의 법궤의 의미를 이해해야한다.

 

 구약에서 법궤는 하나님 자신의 현현을 나타내었다. 그래서 다윗도 이 법궤를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름하는 것이라”(삼하6:2)고 하였다. 일찍이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성소 제도에 의하면 법궤 속에는 다른 두 물건과 함께 십계명의 두 돌비가 있었고 법궤 뚜껑은 속죄소 혹은 시은좌라 불렸는데 그 양쪽에 그룹 천사가 있었으며 그 두 그룹사이에 하나님께서 영광의 빛인 쉐키나(Shekinah)로 임하였다(출25:21,22). 그러므로 법궤는 하나님의 현현 그 자체였다. 그러므로 인간이 함부로 이 법궤에 범접해서는 안되었다.

 

 이런 사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법궤를 를 취급해야 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매우 상세한 지시를 주신 바 있다. 먼저 아론의 후손인 제사장들 외에는 아무도 법궤를 만지거나 덮여있지 않은 법궤를 바라보아서도 안되었다(민14:20). 이전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법궤를 들여 보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삼상6:19-20). 특히 법궤를 이동할 때에 관해서 하남은 “아론과 그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기를 필하거든 고핫 자손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지니 죽을까 하노라”(민4:15)고 지시하셨다. 이런 분명한 지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웃사는 지금 매우 경솔히 하나님의 금령을 범한 것이다.

 

 아마도 웃사가 이렇게 한 것은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법궤와 매우 친밀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법궤는 지금까지 그의 집에 있었기 때문이다(삼하6:3) 그래서 그는 어쩌면 여러 회중 앞에서 자기가 법궤와 친밀하기에 그것에 대해 담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했을 것이다. 그는 아마도 여려 해 동안 자기 집에 궤를 모셔 오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경외심이 희박해졌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엘렌지 화잇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웃사에게는 오만이란 큰 죄가 놓였다.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므로 율법의 신성성에 대한 그의 느낌은 감소되었고 고백하지 않은 죄를 가진 채 웃사는 하나님의 금령에도 불구하고 감히 하나님의 임지의 상징에 손을 대었다”(pp. 705).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히12:29)이시다. 그분은 죄를 죽음보다 더 증오한다. 조인인 웃사가 하나님의 현현 앞에 손을 대었을 때 죄에 대한 하나님의 증오가 그렇게 나타난 것이다.

출처 : 행복충전소♥대명
글쓴이 : DMpasto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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