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방주에 들어간 생물은 한 쌍인가? 두쌍인가? 일곱 쌍인가?
“혈육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함께 새명을 보존케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창6:19-20)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 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취하며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취하여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케 하라”(창7:2~3).
하나님은 각 생물들을 보존하기 위해 암 수의 쌍을 이루어 방주에 들어가게 하셨다. 그런데 창세기 6:19~20에서는 모든 짐승의 “암수 둘씩 한 쌍”을 방주 안에 들이라고 하셨고, 창세기 7:2~3에서는 정결한 짐승과 새는 “일곱 쌍”씩, 부정한 짐승은 “두 쌍”씩 방주에 넣으라고 하셨다. 비평적인 학자들은 이런 숫자상의 차이야말로 성경이 자체 모순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며 그렇기 때문에 창세기는 모세에 의하여 기록된 것이 아니라 여러 다른 전승(Tradition)들을 모아 편집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성경의 영감을 부인하려는 왜곡된 편견이다. 성경은 그 자체 안에서 그러한 차이의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문맥적으로, 창세기 6:19은 전체적이며 총론적인 명령이라면 창세기 7:2~3은 세부적이며 각론적인 명령이다.
먼저, 하나님께서 정결한 짐승과 새들을 일곱 쌍씩 방주에 들어가게 한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홍수 후에 그것들을 반제로 드리기 위함이었다. 노아는 방주에서 나온 후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세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창8:20)다. 그러므로 만일 정결한 짐승들과 새들이 이렇게 보존되지 않았다면 그것들은 번제로 바쳐져 멸종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그 분문 자체가 이렇게 정결한 짐승을 일곱 쌍씩 취한 목적이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케”(창7:3)하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7:2절에 언급된 부정한 짐승을 몇 쌍씩 방주에 들어가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역본에 따라 크게 두 종류의 차이가 있다.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MT)은 “한 쌍씩”이다. 그러나 사마리아 오경, 70인역, 시리아역, 그리고 불가타역은 모두 “두 쌍씩” 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한글 번역본들도 어떤 역본을 택하느냐에 따라,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글 개역성경은 “부정한 것은 암수둘씩” 이라고 하여 사마리아 오경을 따랐다. 또 표준새번역도 “두 쌍씩”을 본문에 싣고, “한 쌍씩”을 따르고 있는 역본들을 난하주에 밝혀주고 있다. 그러나 현대인의 성경은 “부정한 짐승은 암수 한 쌍씩” 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아마도 개역성경과 표준새번역은 “두 쌍씩”이 종족 보존에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본문으로 택한 것 같다.
한편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 짐승을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으로 구분하는 것은 레위기 11장에 기록된 모세의 명령으로 시작되지는 않았을 지라도 노아 자신은 그 짐승들을 이미 알고 있었고 구분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레위기 11장은 새로운 규칙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이미 홍수 전부터 지켜오던 것을 성문화 하여 명시한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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