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예수님

춘천 김상호 2007. 7. 23. 15:00
예수님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어떤 집사님이 저에게 하신 말씀을 거의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여 왔고, 성경도 열심히 보시고, 기도도 많이 하시고, 결혼하여 독립가정을 꾸려 오시면서 아이들을 신앙적으로 기르려고 애쓰는 집사님이십니다. 또 날마다 아내와 아이들과 가정 예배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드리고 있는 참 훌륭하고 모범적인 크리스천 가정입니다. 이 집사님이 저한테 이런 말을 하더군요.

예수님을 믿으면서 자기가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 의문은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시라고 하는데, 과연 하나님은 정말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시는 공평한 하나님이시냐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말 하나님이 공평하시다면 어떻게 자기는 이렇게 교회도 잘 다니고 열심히 기도하고 하라는 것은 거의 다 지키고 있는데 이렇게 잘 살지 못하고, (제가 보기에는 못사는 것이 아닙니다. 4-50만 불짜리 집에서 살고, 자동차도 일본제인 5만여 불짜리 타고 다닙니다),

그러나 자기 친구는 교회도 자주 빠지고 기도도 잘 안하고 신앙도 그저 그렇고, 정말 신앙인처럼 살고 있지 않는 것 같은 데도, 어떻게 거의 500만 불짜리 집에서 살고 자동차도 벤즈 450을 다닐 정도로 축복해 주는 하나님이시라면 어떻게 그런 하나님을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말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 의문은 2000년 전에 예수님이 이스라엘에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 뜻이 정말 진정 무엇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더욱 이상한 것은 나의 죄를 위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고 하는데 어떻게 2000년 전의 예수님이 2000년이 지나 태어난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이냐 하는 것이다

어떻습니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단순히 무슨 집사가 그것도 아직도 몰라? 도대체 어떻게 성경 읽고 기도 한 거야, 또 그 교회 목사는 무엇을 신자들에게 가르쳤길래 집사가 그것도 몰라 라고 말 할 수 있습니까? 


누가복음 7:17-23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그에게 고하니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가로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저희가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말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마침 그 시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소경을 보게 하신지라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예수님의 활동에 대하여 소문을 들었던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자기 제자들을 보냅니다. 직접 오지 못한 이유는 요한이 감옥에 갇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보낸 두 제자를 통하여 예수님에게 다음과 같이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예수님이 요한 당신에게 나아와서 세례를 받은 그 후에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면 행한 모든 기적; 귀신 들린 자들을 고쳐 주시는 것, 병자를 고쳐 주시는 것, 문등병자를 고쳐 주시는 것, 손 마른 자를 고쳐 주시는 것, 등등의 모든 것들에 관하여 소문으로 또는 그의 제자들의 듣고 전하는 소문을 통하여 자세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것들이 예수님이야 말로  자기가 기다리던 분이라는 어떤 확신을 요한에게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요한의 생각에는 예수님에게서 그가 메시아라면, 반드시 메시아가 해야 하는 어떤 것을 하지 않고 뭔가 정말 빠져있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요한이 오실 메시라도 믿고 있는 바로 그 메시아 예수는 요한의 생각에는 어떤 행동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어떤 관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은 나중에 다시 강조하겠지만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도 잠깐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에 대하여 생각하고 기대하는 것은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어떤 것을 하여 주셔야 여러분은 그 예수님을 여러분을 구원하실 메시아라고 믿겠습니까?

즉 예수님으로 부텨 기대하고 고대하고 이루어 주실 것을 간절히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러한 생각을 중단하지 마시고 결론까지 가지고 가시기 바랍니다.


요한은 누구입니까?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요한이 태어난 이유는 단 한 가지 목적입니다.

예수님 보다 앞서서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예수님보다 먼저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1:13-17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천사가 요한의 아버지 사가fi에게 앞으로 태어날 요한에 대하여 예언한 말씀입니다. 요한이 자라는 동안에 모르긴 몰라도 사가fi는 아들 요한에게 그가 해야 할 일에 대하여 몇 번이나 반복하여 강조하고, 계속하여 늘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않고 있던 요한도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어느 다른 사람보다 먼저 알아보았습니다.


마태복음 3:13-17

이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이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John 1:29-34)


이런 요한이 예수님께 지금 메시아임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우실 그이가(오시기로 예정되어있는 메시아가)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메시아를 기다려야 하오리까?”(19절)


왜 이런 질문을 요한은 예수님께 하고 있습니까?

세상에 있는 어느 누구보다도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에 대하여 잘 알고 있고, 예수님에게 세례를 주는 것조차도 황송하여서 거절하려 하였던 요한이 왜 이렇게 터무니없는 질문을 하고 있습니까?

“당신이 우리가 기다리는 메시아가 맞습니까?”


예수님이 여러분의 진정한 구세주 메시아입니까?


경향신문의 책 마을(일주일에 한번씩 부록으로 발행하여 신간 서적을 소개하는 난)이라는 곳에서 예수님에 관한 책 두 권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신이 된 남자” (저자: 프랑스 작가 제랄드 메사디)라는 책입니다. 내용은 예수는 랍비이며 목수인 요셉의 집에 고아가 된 마리아가 입양되어 오는데 이때 이미 요셉은 8순이 되어 있었고 어느 날 여행갔다 돌아와 보니 마리아의 배가 부른 것을 보고 네 명의 아들을 의심하였으나 랍비이며 경건한 사람이었던 요셉은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의혹을 피하기  위하여 마리아와 법적으로 결혼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12월 25일 태어난 것은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는 12명이 아니라 14명이며 예수님은 인도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무덤은 인도의 북쪽 스리나가르에 지금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라는 책인데 저자는 요한 도미니크 크로산이라는 미국 신학자(?)가 쓴 책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예수님은 신이 아니고 단지

극빈자들과 천민들의 나라가 곧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설파한 사회적인 혁명가였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말로 번역되어 다른 신학 서적과 함께 진열되어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하면 예수님의 모습이 많이 지나치게 왜곡되어 있어 세상을 향한 예수님의 외침을 바로 듣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성경은 예수님을 바로 전하지 못하고 잘못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책 소개 끝에 부록을 이렇게 달았습니다. “예수가 과연 인간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던 가를 돼 새겨봄직하다”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그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과연 우리에게 남겨 주시려고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왜 그런 비참한 죽음을 해야 했을까요?

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면 도저히 그 비참하게 돌아가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도저히 이 모든 것을 이해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요한조차도 예수님을 다는 이해하지 못하고 사람을 보내 물어보지 않았습니까?

“정말 당신이 메시아입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도 우리가 잘 아시는 데로 그렇게 요란스럽지 않습니다. 세상을 구원할 왕으로서 오심은 정말 초라한 것이었습니다. 보통 나라의 왕자가 탄생하여도 이것보다는 훨씬 요란스럽지 않습니까? 그러나 약간의 극적인 요소는 있었습니다.

큰 별이 나타나 동방 박사들을 인도하고,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고, 천군 천사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찬송하고,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예수님의 탄생을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양을 치던 목자들 몇 명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동방박사 세 사람입니다. 세 사람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몇 명인지 정확하게 기록되어 나와 있지 않습니다. 다만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기 때문에 한 사람이 하나씩 바쳤다고 보고 세 사람이라고 추측하는 것입니다.

아 그리고 또 있습니다.

박사들로부터 예수님의 탄생을 들었던 헤롯왕과 그리고 몇 명의 신하들 이들이 전부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태어나셔서 30살이 될 때까지 살아온 것은 아주 평범한 것입니다. 물론 외경에는 조금 나와 있기는 하지만.... 자라시는 동안 예수님은 거의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다만 누가복음 2:41-52 절에 기록된 것이 전부입니다. 12살 때의 이야기입니다.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도 그렇습니다. 기적이 있었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님의 머리 위에 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본 사람을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다른 사람 같이 보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마태복음 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그리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립니다. 이것도 예수님한테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함께 들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1:10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As Jesus was coming up out of the water, he saw heaven being torn open and the Spirit descending on him like a dove.

And a voice came from heaven: "You are my Son, whom I love; with you I am well pleased."

이것을 요한은 보았고, 그리고 보았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John 1:32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그러나 다른 사람도 함께 보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리고는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시고 마귀의 시험을 받았고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들어가시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적에 감탄하고 칭송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이제까지 자란 나사렛 동네에는 회당에서 설교하다가 쫓겨납니다. 그래서 가버나움에 가십니다.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 주시고 시몬 베드로의 장모 병을 고쳐주고 12 제자를 부릅니다. 또 문둥이와 중풍 병자를 고쳐 주십니다. 문제는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신 장소가 갈릴리 지방이라는 것입니다. 갈릴리 지방은 이스라엘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북쪽의 조그마한 동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형제들이 이렇게 예수님에게 충고하고 있습니다.

John 7:2-4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무슨 뜻입니까?

만일 네가 메시아라고 하면 여기 조그마한 지방에 있지 말고 유대의 예루살렘으로 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기적을 보게 하고 네가 메시아임을 알리라는 뜻입니다. 이는 형제들조차도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제까지의 예수님이 하신 사역이 자기들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오면 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요한도 이것 때문에 제자들을 보내어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정말 메시아입니까?”

세례요한과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는 어떤 메시아였습니까?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는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켜 이스라엘을 다시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도 그리고 예수님의 형제들도 이런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처음 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에게는 그래서 희망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다시 옛날 다윗 왕 과 솔로몬 왕 시대의 그 찬란했던 영광을 다시 찾을 수 있으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외쳤습니다. 요한이 생각하기에 메시아가 이제 왔으니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이라고 확신한 것입니다. 그래서 헤롯왕이 그 동생의 아내와 결혼하였을 때 그 부당함을 용감하게 지적하였고 또 그것 때문에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아마도 메시아가 자기를 구해 줄 것이라는 것도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가도 감옥에서 들은 예수님 메시아의 행적은 그를 너무나 실망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하여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문둥병자, 귀신들린 자, 가난한자, 등등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그들이나 도와주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실망한 요한이 두 제자를 보내어 예수님께 물어봅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니까?”


왜 여려 분은 예수를 믿습니까?

무엇을 기다하시고 예수를 믿습니까?

왜 예수를 믿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열심히 기도하셨더니 무엇을 얻으셨습니까?

스스로 생각하시고 무엇을 얻었는가를 계산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소비한 그 많은 시간들 그리고 십일조나 감사헌금으로 드린 그 재물들, 그런데 나는 이렇게 하여서 과연 무엇을 얻었을까하는 질문을 하셔야 할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조금 심했나요? 순수한 마음을 가지신 분들을 모욕하지 않았을까 두렵습니다. 사실 이것에 대한 대답을 확실히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믿고 나는 구원받았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다 나는 이제 죽으면 천당에 간다. 이것은 좀 예수님 믿고 너무 가난하게 사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 믿으면 천당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저는 믿는 사람은, 즉 예수 믿으면 이 세상에서 풍성하고 아름다운 삶도 누리고 살아야 한다고 확신하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잘살고 죽어서는 천국 가고.........................이것 때문에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돌아가신 이유입니다.


예수님 믿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니 이렇게 다시 물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믿었더니 무엇이 믿기 전과 비교해 달라져 있습니까?


아니 예수 믿으니까 바뀌는 것이 누구입니까?

또 열심히 기도하면 제일 먼저 바뀌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나입니다. 내가 제일 먼저 바뀝니다.


간단히 예를 들겠습니다. 나도 그 사람을 미워하고 그 사람도 나를 꼴 보기 싫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어떻게 남을 미워하며 살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간절히 하나님께 그 사람과 화해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결과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 사람이 180도 변하여 나한테 어느 날 찾아와서 내가 잘못했다 잘 지내자 이렇게 그 사람이 변화가 됩니까? 아닙니다.


내가 열심히 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면 물론 그 사람도 변화되지만 먼저 변화되는 사람은 나입니다. 내가 변화되어 그 사람을 잘 대하면 그 사람이 변화되어 나를 잘 대해줍니다. 내가 우리 가정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면 우리 가정의 모든 구성원이 먼저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바뀌고 그 다음에 우리 가정이 바뀝니다.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어 성령이 내 마음에 오시면 내가 먼저 변화되어 새사람이 됩니다.

항상 이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적과 기적과 가르침을 주시었지만 세상은 조금도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변화된 사람은 몇 사람뿐이었습니다. 여전히 바리세인은 바리새인었고 회개한 사람은 겨우 몇 명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죽인 사람들이 누구였습니까?

예수님의 기적을 보았던 사람들이었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감탄하며 들었던 사람들이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그 옆에서 환호하며 박수를 쳤던 사람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자기들의 옷을 길에다 깔고 호산나를 합창하였던 바로 그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이해 할 수 없는 것이 이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났었던 사람들이 왜 하나도 변화되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 입니까?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은 예수님을 스쳐 만났기 때문입니다.


스쳐 만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길거리에서 걸어가다 서로 아---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지나쳐 서로 멀어져가는 아주 잠깐 동안의 만남을 의미합니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며, 그로 인하여 나의 무엇이 변화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전혀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나는 나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만일 하나님이 우리 곁인 이 세상에 오시지 않고 그냥 하늘에 계시며 우리에게 어떤 지시만 하였다면, 아마 우리는 경배는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지 않으면 벌을 내릴 테니까요. 그러나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은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내가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는 일은 죽어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 바로 이것 때문에 예수님은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친구로 그리고 구세주로 받아드리는 사람은 그의 모든 것이 변화됩니다. 그리고 새사람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다가 실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한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외부적으로는 전혀 아무런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어도, 보기 싫은 사람은 하나도 변화되지 않고 역시 꼴 보기 싫고, 내가 열심히 기도해도 사회는 역시 똑 같고, 어제나 오늘이나 사회에는 불의가 판을 치고....... 하나도 변화되지 않습니다.


요한이 고민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예수님 메시아가 오셨는데도 그가 일을 시작하셨는데도 이스라엘이 독립되어질 가능성은 아직도 전혀 없는 것 같고, 바리세인들은 여전히 바리세인들이고 그리고 여전히 이스라엘을 움직이는 사람들이며,  모든 어떤 것도 새로이  변화될 조짐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오면 커다란 변화가 올 줄 알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대하고 믿었습니다. 기도하며 믿었습니다. 좀 변화되게 해달라고....

그러면 내가 잘못 믿었고 또 나의 기도가 헛된 것이었습니까?

아닙니다. 내가 변화되었습니다. 사실 내가 바뀌면 모든 것이 다 바뀝니다.

내 친구를 대하는 내가 바뀌면 친구도 바뀝니다, 가정도 마찬가지고,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주위 환경도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그를 받아드리는 모든 사람을 변화시켜 천국 백성을 만들기 위하여 오셨던 것입니다.


이 목적이 실패하셔서(슈바이처 박사와 이단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에 아니 나의 죄 때문에 희생 제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직도 예수님께 실망하시고 계십니까?

이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다가 실망할 까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누가복음 7:23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복 있는 자들이 되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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