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난해구절(신약)

[스크랩] [성경바로보기]마가복음 13장의 예수님의 말세론

춘천 김상호 2008. 11. 10. 08:17

마가복음 13장의 예수님의 소 묵시록 

종말론 연구에 있어서 ‘계’과 더불어서 극난한 것이  마가복음 13장이다. 

막 13:28-30 “무화과나무에서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지고 잎이 돋으면 너희는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인자가 문앞에 가까이 온 줄 알라. 이 세대가 끝나기 전이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앞에서 종말적 내용을 언급한 후에 이 본문이 나온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무화과나무에서 잎이 돗은 것이 무엇인가? 조용기 목사 책에서는 이스라엘의 독립이라고 말한다. 그 후 한 세대는 1998년이다. 그래서 지금은 입을 다물고 있다. 이 구절을 이스라엘의 독립으로 생각한 교회 지도자들이 많이 있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잡아서 78년경으로 보다가, 다시 50년으로 잡아서 98년을 전후하는 것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이스라엘의 독립을 말하고 있다. 

 

혹자는 한 세대를 70년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또 세대주의자들은 구약 사천년 신약 이 천년 그리고 천년 왕국을 말하기 때문에 2000년을 종말로 말하기도 한다. 

문제는 “무화과나무에서 잎이 돋는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모든 것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말한다. 마가복음 13장의 역사적 정황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마가복음은 언제 기록되었을까? 주후 70년 전후로 일반적으로 보고 있다. 이것은 그 때, 예루살렘이 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직후거나 직전이라는 것이다. 직전이라도 예루살렘이 망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AD.67년에 독립전쟁이 있었고, 거기서 도륙 당하고 참상이 말로 형언할 수 없었다. “그 때에 산으로 도망할 지어다”라는 

예언이 있다. 바클레이는 예수의 예언이 문자적으로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고 한다. 산으로 도망한 사람은 살아 남았다. 

 

요세푸스의 기록을 보면, 예루살렘이 망할 때, 무려 110만 명이 죽은 것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97000명이 포로가 되었다고 기록한다. 그는 과장이 심하기 때문에 실제로 110만명이 죽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엄청난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즉 시체가 더미를 이루고 있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먹을 것이 없어서, 실제로 아이를 죽여서 삶아 먹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예루살렘의 멸망은 비극적이었다. 그리고 로마 군병들이 예루살렘 성에서 노략하게 위해서 집문을 열고는 놀라서 도망하는 일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눅 19:42-44. 역사의 예수님은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참상을 예언하고 계셨다. 마가복음 13장은 예수님이 쓰고 있는 것이 아니고, 마가가 쓰고 있는 것이다. 즉 성이 망한 직후에 그 참상을 보면서 마가가 이 본문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13:8, 13:7; 전쟁의 소문, 마가는 이것이 예수님의 예언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보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살아남은 사람이 있는 것은 하나님이 환난의 날을 줄여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무화과 나무의 잎이 돋는 다는 것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내용적으로 가리킨다. 그리고 그 멸망을 보면, 인자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마가는 멸망의 참혹상을 앞에 두고 예수님이 오심이 가까왔음을 말하는 것이다. 

마가가 주님이 가까이 왔다는 것에 대하여, 13:32에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라고 말하고 있다. 즉 마지막 날이 언제인가 하는 것은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예언이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소관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독립전쟁에서 실패하고 도륙을 당하고 난 후에, 거짓 그리스도가 판을 치고 있는 혼란의 상황을 생각해야 한다. 마가는 그런 잘못된 예언을 믿지 마라는 것이다. 그 날과 그 때는 주님에게서 받은 예언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의 오심이 가까운 것은 틀림없으나 그 날은 아무도 모른 다는 것이다. 

 

13:44이하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록한다. 집주인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저물 때부터 새벽까지 아무 때든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졸지 말고 깨어서 집주인이 맡긴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마가의 메시지의 초점이 들어 있다. 마 24의 내용이  마가복음의 반복이다. 그리고 25장도 연결되는 본문이다. 열 처녀의 비유; 깨어 기다려야 한다. 달란트의 비유; 이 비유는 종말론적 비유이다. 주인이 떠났다는 것이다. 떠남과 오심의 사이가 종들의 시간이다. 이 비유는 기다리는 종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가르치고 있다. 

 

(양과 염소의 비유) 이 본문들의 중요한 정신은 주인이 맡긴 그 일을 충성스럽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심을 기다리는 종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뛰어다니지 말아야 한다. 오직 주님이 맡긴 일을 충성스럽게 해야하며, 그 일을 어떻게 해야 했는가에 따라서 심판이 가려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종들의 해야 할 일은 작은 일들이다. 종말론은 작은 일들이 영원과 연결되어 있다. 

 

마가나 마태나 주님의 오심이 언제인지는 모른다. 그러니 허황되게 뛰어다니지 말고 주님이 맡긴 일을 충성스럽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영원한 운명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종말론을 바르게 알면 붕붕 떠다니는 것이 아니라, 땅의 사람이 되어 간다. 얼마나 신실하게 주어진 일을 수행했는가에 따라서 최후의 심판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마가의 묵시록의 의도는, 첫째로 예루살렘이 망했고, 대환란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둘째로 무화과의 싹이 나면 여름이 가깝듯이 예루살렘 멸망후에 주의 오심이 가깝다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 거짓 예언에 속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의 오심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넷째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맡은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영생과 영벌의 시금석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깨어서 자기의 일을 신실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초대교회 시대에 양날개같은 거장들이 있었다.박윤선박사와 박형룡박사가 한국의 초대 신학자로 크게 쓰임을 받으신 분들이다, 그분들의 말은 신학의 기초가 없던 시기에 크게 하나님의 쓰임을 받으셨다.박윤선박사의 신학은 신앙의 길을 인도하는 구원론쪽에 비중을 두었기에 주옥같은 주석들을 남겼다. 지금도 신학도들에게 참고서적으로 추천되는 주석들이다. 한편 박형룡박사는 명설교가요, 개혁보수 신학을 추구하며 여러가지 말세론과 신학서적들을 집필하셨다.특히 예정론은 강하게 주장하셨다.한 세대가 지난지금 한국교회는 이 두분의 신학사상을 기초로 발전을 하였다.

 

말세론은 박형룡박사의 요약한 것을 근대까지 사용하며, 특히 이단들이 그들 나름이지만 한번 정해놓은 것을 기초로 변경하지않고 덧붙여 사용하였고 조용기목사등 많은 집필가들이 박형룡박사의 말세론을 추축으로 글을 썼기에 변할 수 없는 진리처럼 되었다. 한번 잘못들어간 정보는 그누군가 다시교정을 하려하여도 도리여 공격을 당하며 바른 것을 듣지를 않으려한다.왜?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냐? 성경보다 신학자의 말이 더 권위가 있는가? 지금이라도 바른 성경보기를 하며,말세론을 정립하여 이단들을 그만 만들어야 하겠다.扈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일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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