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5.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는 날에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다. 그러나 아담은 930세를 살았다. 그 의미는?
5.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는 날에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다. 그러나 아담은 930세를 살았다. 그 의미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
“아담이 셋을 낳은 후 팔백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삼십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창5:4~5)
하나님은 아담에게 그가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고 경고하셨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아담은 죄를 범하는 그날 죽지 않고 “930세를 향수하고 죽”(창5:5)었다. 한편, 뱀은 하와에게 그가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산악을 알”(창3:5)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들이 선악과를 먹자, 그들은 과연 뱀의 말대로 바로 그날 “눈이 밝아”(창3:7)졌고, “선악을 아는 일”(창3:22)에 있어 하나님과 같이 되었다.
여기 뱀이 사용한 “날에는” 이라는 단어는 하나님께서 창세기 2:17에서 사용하신 단어와 똑 같은 단어로 히브리어(키 브욤)이다. 그런데 똑같은 단어가 사용된 이 두 말에서 왜 사단의 말은 그날 문자대로 이루어졌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그날 성취되지 않았는가? 왜 하나님의 명령과 그것이 성취 사이에는 간격이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대답은 성경이 말하는 죽음 혹은 사망의 정의를 살펴보는 것이다. 성경은 사망을 숨이 멈추는 육체적 사망, 하나님과 분리되는 영적 사망, 영원한 죽음인 둘째 사망 등,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첫 부모는 이 날 범죄 허였으나 아직 죽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 날의 죽음은 분명히 영적 죽음이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아담은 이 날 죄를 범했고 그는 그 날 “허물과 죄로 죽”(엡2:1)었다. 그래서 랑에(Lange)도 이 죽음을 상징적인 도덕적 죽음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이해는 아담의 범죄의 결과에서 추론한 것으로 그것이 반드시 하나님의 명령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했을 때, 영적인 죽음만을 두고 말씀하셨을까?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죄를 범한 직후에 그에게 당신이 말씀하신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히 하셨다. 그것은 곧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창3:19)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죽으리라”는 의미는 결코 영적인 죽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님이 말씀하신 “죽음”의 일차적 의미는 흙으로 돌아가는 육체적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날 인간은 죽지 않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경고는 실패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그 날 그들에게 분명히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죽음을 선언하셨다. 그래서 풀핏(Pulpit)주석은 “그들이 먹는 날에 죽지 않았다고 해서 선고의 진실성을 의심할 이유는 없다. 형 집행 정지는 하나님의 간섭으로 인한 것이었으나 세상의 경험은 하나님의 징계에서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하였다. 엘렌 G 화잇도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리의 첫 부모에게 주어진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경고는 저희가 금단의 실과를 먹은 바로 그 날에 죽으리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날에 취소할 수 없는 선고가 언도될 것이었다....바로 그 날 그들은 죽음의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었다.” (pp. 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