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난해구절

[스크랩] 4. 천지 창조는 여섯째 날 마쳤는가? 일곱째 날 마쳤는가? 그리고 왜 일곱째 날에는 “이는 일곱째 날이니라”가 없는가?

춘천 김상호 2008. 8. 29. 10:28

4. 천지 창조는 여섯째 날 마쳤는가? 일곱째 날 마쳤는가? 그리고 왜 일곱째 날에는 “이는 일곱째 날이니라”가 없는가?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거의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창세기 2:1~3을 창세기 1장의 여섯째 날에 이어서 주석하고 있다. 그것은 비록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현재의 성경이 창세기 2:1~3을 1장과 분리시켜 놓았을 지라도 히브리 성경은 이 부분을 창세기 1장의 연속을 구성하고 있으며, 또 내용과 형식도 1장의 연속으로 보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여하튼 창세기 2:1~3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주석상의 문제가 있다.

첫째, 창세기 2:1은 여섯째 날이 끝나고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창세기 2:2은 “하나님이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라고 한다. 우리말 번역은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라고 했지만, 히브리어 바욤하슈비이(י󰘟י󰔩󰚒󰖏 םוֹיּ󰗏)는 “일곱째 날에”(on the seventh day)이다. 그러므로 여섯째 날이 끝난 후, 창조 사업이 다 이루었다고 하는 1절과 일곱째 날에 그것이 다 마쳤다는 2절은 서로 모순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몇몇 역본들은 2절의 “일곱째 날”을 “여섯째 날로” 바꾸었다. 그러나 히브리어 본문은 분명히 일곱째 날이다. 그럼 그 뜻은 무엇인가?

둘째, 왜 창세기 2:1~3에는 “일곱째 날”이라는 단어만 3번 반복되고 있고 “안식일”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가?

셋째, 왜 창세기 2:3의 끝에는 앞의 육일과 마찬가지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일곱째 날이니라”는 표현이 없는가?

먼저, 창세기 2:1과 2:2의 관계를 살펴보자, 창세기 2:1은 여섯째 날이 끝나며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 구절에서 “천지”는 창세기 1:1의 단어와 같은 단어인데, 특이한 것은 “만물”이 사용된 점이다. 여기 “만물”이란 히브리어 단어 츠바암(םאָ󰔧󰙃)은 흔히 성경에서 “별들”(신4:19)혹은 “천사들”(왕상22:19)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웬함(Gorden J. Wenham)은 “여기서는 이 단어가 지상에 창조된 모든 것을 가리킴에 틀림없다”(WBC, 1:35)고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창세기 2:2에서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에 마쳤다고 하는 것이다. 한글 [개역성경]은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라고 하여, 마치 일곱째 날이 오기 전에 마쳤다고 해석하여 번역하고 있지만, 히브리어 바욤 하슈비이는 분명히 “일곱째 날에”(on the seventh day)이다. 그래서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시리아역, 사마리아 오경, 그리고 <70인역>은 여기 “일곱째”를 “여섯째”로 바꾸어 놓았다. 또 뉴맨(Newman)과 같은 현대의 주석 가들도 그렇게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이러한 번역은 히브리어 성경을 앞에 놓고(Vorlage) 그대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자의적으로 한 것이다.

히브리어 성경은 분명히 “일곱째” 날이다. 우리는 본문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해야할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천지와 만물은 여섯째 날에 다 이루었지만, 일곱째 날에 창조된 것은 무엇일까? 성경은 바로 “안식”이라고 대답한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 물리적인 세상을 창조하셨지만, 제칠일 에는 “안식일 창조”하신 것이다.

이것은 안식의 개념을 정적(靜的)인 상태로만 이해하려는 헬라적 사고방식에는 대단히 역설적인 개념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성경적 안식 개념은 단순히 “일로부터의 안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의 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안식일은 하나님 아버지처럼 자신도 일하는 날이라고 하였다(요5:17). 그가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쳐주고 눌린 자들을 자유롭게 할 때, 그런 일들이 그들을 정녕 쉬게 하였다. 그런 것이 바로 “안식일의 일”인 것이다. 사실, 성경은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단순히 “쉬셨다”고 하지 않고 그날을 “복주사” “거룩하게 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성경 본문을 바꿀 것이 아니라, 안식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바꾸어야 한다.

둘째, 그러면 왜 이 본문에는 “일곱째 날”이라는 표현만 등장하고 “안식일(욥 하샤바트,ת󰔯󰚌󰕘 םוֹי)”이라는 말은 없는가? 여기에 대해 그것은 사바트 즉 성경의 안식일과 매월 15일의 바벨론 만월일인 샤파투(shapatu)를 혼동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견해도 있다. 이러한 이해는 넷째 날의 기사에서 구태여 “태양”과 “달”이라는 용어를 안 쓰고 “큰 광명” “작은 광명”이라고 표현한 이유를 바벨론의 우상 숭배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과 맥락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성경을 바벨론적 관점에서 해석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여기에서 일곱째 날을 “안식일”이라는 명사로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다른데 있다. 그것은 이 창조주간에 관한 기록이 모두 “몇째 날에 무슨 일을 했다”는 공식으로 기록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공식에 의해 이 날도 “일곱째 날은 안식일이니라”고 명사 욥 하샤바트를 사용하지 않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고 동사를 사용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러면 왜 창세기 2:3에는 다른 날과 같이 매일의 끝에 나오는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일곱째 날이니라”라는 구절이 없는가? 윗치만 니(Watchman Nee)는 이 사실을 근거로 이 날부터 안식일은 일주일 중 하루가 아니라 모든 날이었다고 주장한다. 즉 여기 제칠 일에 하루를 마감하는 표현이 없다는 것은 이 날부터 모든 날이 안식일임을 증거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또 한번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없는 것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는 명제이다. 어떤 구절이 기록되지 않은 것에 대한 이유를 밝히는 것은 항상 여러 가지 가능성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유를 찾아야 할 때면 우리는 나머지 성경 사상과 결코 충돌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만일 위치만 니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성경에 그렇게도 많이 기록된 “안식일을 구별하라”는 명령은 처음부터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닫지 않으신 것은 그 날 자체의 구분이 필요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 날에 베풀어진 안식과 복과 거룩이 모든 날로 흘러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욱 성경적일 것이다.

출처 : 행복충전소♥대명
글쓴이 : DMpasto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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